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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3

2장 1일째



33.

 -우리의 유전자는, 즉 나의 유전자는 이런 일을 하게끔 세팅되어 있지 않았어. 기본적으로 내 유전자는 내가 하는 일을 무척이나 싫어하지. 하지만 난 이 일을 선택했어. 선택은 나의 문제이고 내가 한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책임을 지는 거야. 나는 일을 시작하면서 후천적으로 유전자를 변이 시켜야 했어. 물론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변이를 말하는 게 아니야. 내가 유전자를 변이 시켜 내 육체이자 내 정신이 일을 할 수 있게끔 그 시스템에 다가간다는 말이지. 하지만 유전자는 그럴수록 나를 옥죄여 왔어. 나는 버티고 말이야. 유전자라는 큰 강줄기는 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오래전부터 흘러가는 거야. 내가 변이 되지 않으면 내가 안고 있는 관념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대로 흘러가는 것뿐이야. 이것을 끝내려면 나의 세대에서 잘라버리던지 아니면 변이를 시키는 수밖에 없어-


 소피는 마동에게 표현을 달랐지만 내용은 비슷한 말을 왕왕했다. 아마도 소피가 그런 말을 할 때에는 와인을 많이 마셨을 거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마동이 트위터에 접속을 해서 소피에게 맨션을 올리면 소피는 다른 팔로워들보다 마동에게 먼저 대화를 건넸다. 소피의 팬들은 그런 마동을 무척이나 질투했다. 그러기를 25, 2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소피의 팔로워들 중에서 마동에게 소피와는 어떤 관계 나며 거친 맨션을 날리는 흑인들도 가끔 있었다. 절대 만날 일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트윗: 소피 안녕! 이제 출근하려고 아침 먹는 중이야.


 소피는 마침 트위터에 접속해 있었다.


 트윗: 어때? 어제는 멋진 밤을 보낸 거야? 동양의 멋진 친구.


 소피는 마동을 부를 때 언제나 동양의 멋진 친구라는 표현을 썼다. 그 말은 마동의 입장에서 은근히 듣기가 좋은 말이었다. 세상의 잘 나가는 미국의 성인 여배우에게 이렇게 멋진 단어의 조합을 들을 수 있다니.


 트윗: 어젠 뭐랄까, 경이로운 밤이었어. 그것이 실체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경험임에는 확실해.


 늘 맛있게 먹던 세트메뉴가 오늘따라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도 입안이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마동은 애꿎은 커피 잔을 들어서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마도 밤에 비를 맞으며 조깅을 한 탓이다.


 트윗: 아침에 일어났더니 감기가 걸린 것 같아. 여긴 무더운 여름인데 말이지,라고 맨션을 보내고 마동은 이어서 또 보냈다.


 트윗: 아마도 어제 비를 맞고 조깅을 하고 들어와서 냉방을 하면서 그대로 잠이 들어서 그런가 봐. 여긴 꽤 더워.


 트윗: 여름에 감기가 걸리는 건 좋지 않아. 여기서도 감기가 걸려버리면 상대방 남자들이 싫어하는 내색을 많이 낸다구.


 소피의 맨션은 곧바로 날아온다. 소피는 워싱턴에 살고 있다. 그녀를 사진으로 처음 봤을 때 아메리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북유럽 출신의 소피는 얼굴이 계란형으로 미국인과는 다르게 생긴 예쁜 얼굴을 지녔다. 트위터에 올린 소피의 고화질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얼굴에 하얀 솜털이 유난히 많았다. 추운 지대의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들도 얼굴에 솜털이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많았고 한국인 중에서도 털이 많은 사람이 있고, 솜털을 많이 지니는 사람도 있다. 소피는 성인 여배우 치고는 아직 가슴확대 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마동이 보기에는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드문 풍만한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닥에서는 그것으로는 무리라고 했다. 자연적인 가슴을 선호하는 포르노 감독이나 팬들이 있지만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고 소피는 단순히 수술비용을 마련하지 못해서 아직 미루고 있다고 했다. 소피와 대화를 하는 동안 목이 말라서 따로 물을 가져와서 들이켰다. 물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잠시뿐, 입안이 마르다는 느낌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동은 대체로 물을 자주 많이 마시는 편이라서 물의 맛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물에서 맛이라는 것이 완벽하게 빠져버리고 목으로 넘어갈 때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바닷가의 백사장에 소나기가 내린 후 금세 모래가 말라버리는 것처럼 목구멍은 꺼끌꺼끌했다. 물은 목구멍의 기도를 타고 흘러 내려갔지만 기도의 벽을 적시지 못할뿐더러 기도 벽에 있던 물기마저 같이 증발시켜 버렸다. 지금 상황이 늘 비슷한 패턴의 평범함에서 벗어나서 마동은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도 고민스러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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