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3.
처제는 우리 집에 아예 거처를 마련했고 열심히 마을의 상황과 상태를 블로그에 작성 중이었다. 처제는 마치 신념을 가진 사람처럼 세세하고, 자세하게 마을의 상황에 대해서 외부에 알리려 블로그를 작성했다. 물론 거기에는 약간의 허구와 스토리의 확장이 있었다. 글을 올리자마자 블로그의 팔로워들에게 알림이 가고 사람들이 들어와 읽고는 퍼 가기 시작했고 댓글이 달렸다. 처제는 열심히 댓글에 대댓글을 달았다.
형민은 다음 날에도 우리 집으로 왔다. 형민은 처제 남자친구의 이름이다. 집으로 오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형민이가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냄새며, 구겨진 머리며, 헐떡거리는 숨이며, 처제와 형민이 때문에 나는 상자를 마음 놓고 열어 볼 수 없게 되었다.
두 사람에게 상자 속 이데아를 들킨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다음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자 속 이데아는 나를 부르지 않고 곱게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거울을 보니 나의 얼굴은 예전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이것 역시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세 명은 매일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누구도 불만 같은 것은 없었다. 맛있었고 그저 공복을 채우면 그만이었다.
아내에게는 연락이 없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지났지만 아내는 연락이 없고 처제는 언니의 행방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나 몰래 언니와 연락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느낌으로는 언니와 따로 연락을 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형민이는 버추얼 리얼리티 기기로 귀신의 집을 구경하는 곳을 아는데 그곳에서도 새내기 여자 후배의 몸에서 봤던 빛을 본 것 같다고 했다. 그 기기묘묘하고 연한 안개 같은 빛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우리는, 아니 나는 집에 머물러야 한다. 나는 점점 더 강하게 그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내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집에는 이데아가 있다. 잠들어 있는 이데아를 품에 안고 깨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이데아가 발하는 그 빛이 내 몸에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귀신의 집이라는 곳에서도 그 빛이 나왔다는 건 거기에 무엇이 있다는 증거다. 이 마을을 넘어 이 도시를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 어떤 존재, 내지는 어떤 조직이나 집단이 거기 귀신의 집이 있는 건물에 있지 않을까.
아내에게 다시 메시지를 넣었다. 그동안 보낸 메시지는 아직 읽지 않았다. 아내는 폰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폰을 꺼내보지 못하는 것일까. 폰이라는 건 현재 우리의 제3의 손과 눈이 되었다. 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아내가 아직 나의 메시지를 읽고 있지 않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아내를 찾아야 하지만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형민과 나는 그 기기묘묘한 빛이 흘러나왔다는 건물에 가보기로 했다.
처제가 옷을 입고 가방을 메었다. 처제만 남겨두고 갈 수가 없었다. 만약 처제가 상자를 열어 본다면 일이 커진다. 그것을 블로그에 돌린다면 아마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마구 들어오려 할 것이다. 사람들 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이데아를 연구 목적이라며 회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그래서 처제도 같이 가기로 했다. 처제는 우리의 말에 흥미를 가졌다. 처제는 나의 이야기를 한 시간이나 듣고 나서야 남자 친구에 대한 의심을 조금 풀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들어온 상황을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