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9.
일단 형민은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했다. 그 주차공간에는 전기 차 충전소도 있었다. 녀석은 충전기를 꽂아서 충전을 한 다음에 나와 함께 아파트 단지 앞으로 갔다. 일단 모든 사람들을 통제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전부 내보냈다고 헸다, 안에서는 위험하기 때문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정문을 통과할 수는 없었다. 현관문 같은 대문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 통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파트 단지는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평소에는 그 사이를 통과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전부 제복을 입은 사람들과 방역복 사람들이 통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녀석이 경찰들의 제복을 잘 보라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경찰의 제복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르다고 했다. 지난번에 집으로 찾아온 그 경찰제복과 같은 옷이며 총도 그렇다고 했다. 형민은 나에게 웨스트 월드를 아느냐고 물었다.
“웨스트 월드? 소설인가?”
“원작은 소설이죠. 미드 시리즌데 몰라요?” 형민이가 말했다. 웨스트 월드 안에서는 추악한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웨스트 월드라는 것이다. 억만장자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내면 뭐든, 무슨 짓이든 다 할 수가 있다. 강간이든, 칼로 배를 찌르던, 배를 가르든. 강도짓이며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 모든 게 허용이 된다고 했다. 엄청난 돈을 내고 웨스트 월드 속으로 들어가서 그 안의 세계에서 마음껏 인간을 유린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룻밤에 5만 달러다. 이 비용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하룻밤 사막에서 불을 피우고 지내는 비용만을 말한다.
호스트라고 불리는, 유린을 당하는 사람들은 휴먼로이드로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생겼다. 생각하고 말하고 의식하고 기억한다. 그러다가 상처가 나고 고통을 받으며 회사에서 수거해 치료를 하고 기억을 삭제해서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여 웨스트월드 속에 다시 보낸다. 그리고 또다시 고객들에게, 호스트들에게는 이민자들에게 유린을 당하게 된다. 휴머노이드들에게는 이 무한굴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 웨스트 월드다. 호스트들은 그것이 서비스인지 당연히 모르며 그저 열심히 하루를 지낼 뿐인데 어느 날 이민자들이 와서 사건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고 여자들을 유린한다.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웨스트 월드 속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형민이 말했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민자가 아니라 호스트들인 것이다. 유린을 당하는 쪽에 우리가 서 있다. 사람들은 이상하지만 비극을 원한다. 타인의 비극을. 마치 그렇게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에게 유린당하고 조종당하는 호스트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휴머노이드들이 나중에는 인간에게 반기를 들고 공격을 한다.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인간이며 인간 세계에서 강력한 공포 역시 인간이다.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다른 점은 휴머노이드들은 현실에 만족하지만 인간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벗어나려고만 한다. 인간은 인간을 믿기 못하지만 휴머노이드들은 서로 더 믿는다는 것이다. 지금 이 혼란한 세계 역시 인간이 현실에 대해 불만족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현실 세계든, 웨스트 월드 속, 세계든 먹히는 것은 돈이다. 돈이 있다면 누구든 매수할 수 있다. 형민에게는 돈이 많았다.
인간에게 뭐든 허용이 되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면 인간은 어째서 타인의 비극을 초래하려고만 할까. 타인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행복해진다면 그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인간은 허용이 가능하다면 마음 놓고 범죄를 저지르려고 할 것이다. 자동차를 부수고, 보석상을 털고, 여자들의 옷을 찢어 벗기려고 한다. 인간을 유린하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더 심각하게 훼손시킬까, 더 고통스럽게 강간을 해서 배를 가르고 그 안에 어떤 이물질을 집어넣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