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0.
더 배우고, 많이 배우고,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을 다니고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일수록, 권력자일수록, 관료일수록 더 타인을 업신여기고 유린하려 든다. 수치심 따위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라지만 어째서 그럴까. 귀를 잘라내면 어떤 느낌일까, 야들야들한 귀가 얼굴에서 떨어져 나갈 때 그 감촉은 어떨까. 울부짖는 얼굴을 보는 건 어떨까, 강간 후 성기 안에 쥐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인간의 탐욕이나 욕망은 어디까지 올라가야 만족을 할까. 뭐든 하라고 하면은 악독해지고 더 악독해져서 그걸 몸소 표현하려고 한다. 현실에는 어째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의 사태가 그런 인간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일에 아내가 속해 있다는 말일까.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형민이가 자동출금기에서 오만 원짜리 이만큼(엄지와 검지로 이렇게)을 출금해 왔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뒷문에 경비를 쓰고 있는 제복경찰 둘을 불러 거래를 했다. 형민이는 민증 뒤 주소를 보여주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데 집에 있는 약을 가지고 나올 테니 이 돈을 받고 모른 척 해 달라, 정문에서 이런저런 절차 없이 여기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다.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은 아직 초년병 같은 얼굴이었다. 형민이는 그들을 잘 구슬렸다. 그렇게 해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제복까지 얻어 입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떨까. 나는 지금 현재 나에게 모든 허용을 가능케 해 준다면, 내가 웨스트 월드 같은 곳에 들어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나의 본심인지 본질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더 어리고 예쁜 여자를 강간을 하고 싶은 것일까. 저 여자의 행복을 짓밟고 싶은 걸까. 나는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헤 깔리는 걸까. 나는 그동안 잘못 살아온 것일까. 은행에서 대출 업무 때문에 찾아온 고객들 중 여자들에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아무리 예쁜 여자가 왔더라도. 그러나 나도 나를 믿을 수가 없다. 사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가장 믿을 수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
“형님, 조용히 하세요. 뭔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거예요? 경찰제복 입은 걸 옷도 맞지 않아서 이상하게 보이는데 잘못하다가 걸리면 우리는 잡혀갑니다. 형님.”
경찰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끼리도 서로 아는 사람은 알지만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한 부서, 한 회사에서 같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청을 받아서 일을 하거나 부서가 다른 곳에 흩어져 있거나 하는 것 같았다. 서로 지나치면 가볍게 목례로 까닥하고 지나치면 되었다. 누가 누군지 서로 모른다. 형민이는 주머니에 오만 원 권이 한 뭉치가 더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운행하지 않았다. 15층을 걸어 올라갔다. 위험했다. 크랙이 가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계단의 창문이 깨져 있는 곳도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가짜는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또 위험을 감수할 만큼 새로운 경험이었다.
“당최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뉴스에서는 이 근방 지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싱크 홀이 생겨나면서 그 여파 때문에 자기장 같은 에너지가 하늘로 솟구치면서 아파트 건물을 부셨다고 하는데, 어딘가 석연치 않아요. 그때는 휴대전화 와이파이가 되기 때문에 위성을 통해서 이 근방에 싱크 홀을 탐지했지만 그런 대단위 주파수가 포착되지는 않았거든요. 어쨌거나 지금 정부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인원도 부족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이에요. 정부에서는 일이 터지기 전에는 마치 모든 걸 다 해결할 것처럼 늘 떠드는데 막상 일이 터지면 우왕좌왕하는 거 같아요. 형님, 갑자기 라면이 너무 먹고 싶네요.”
녀석, 이럴 때에 라면이라니. 전염성이 강한 게 배고플 때 상상 속의 라면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