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4.
그러는 동안 아내도 사라지고 처제도 사라졌다. 아내는 분명 어딘가에서 나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형민에게 은행에서 일하는 동료에게 한 번 전화를 하게 했다. 그러나 동료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앞의 번호와 중간번호는 기억이 났지만 뒤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득 아내의 번호가? 하며 생각하니 아내의 폰 번호는 기억이 났다. 나는 형민에게 처제의 폰 번호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녀석은 당연하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기억이 무엇인가에 의해 조금씩 틀어지거나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형민은 은행에 전화를 해서 동료의 이름을 대고 부탁했다. 형민은 전화를 나에게 바꿔 주었다. 나는 나라고 밝히고 동료에게 왜 그때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동료는 잠시 멈칫멈칫하더니, 만나러 가려고 했지만 그걸 윗선에서 알게 되었는데 자네를 만나면 나까지 불이익을 당한다고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잖나. 자네를 만나러 가지 못하게 나를 막더군, 은행에서. 자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네, 전화도 되지 않더군.”
“왜 나를 만나면 자네에게 불이익이 생긴다는 거지?” 나는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러나 여기 은행에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 확실해. 다른 건 말할 수 없지만 여기 은행은 통제에서 벗어나있어. 들어와 봐서 알겠지만 여기는 경찰이나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없어.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유일한 곳이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 같은 말단 직원은 알 수는 없네.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겠네. 그리고 은행은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라고 하네. 평소와 다름없이 말이네. 그러면 월말에 가져가는 돈이 더 많을 거라고 말이네, 수당이 더 붙는다는 말이지. 다만 은행을 나간 사람들을 만나면 안 된다고 했네. 자네를 말하는 거 같았지. 하지만 자네가 오기 전에 어떤 고객이 나에게 자네가 오면 전해주라는 것이 있었네.”
“그게 뭐지?”
“나도 몰라. 어떤 물건인데 그 안에 숫자가 새겨져 있었네.”
“혹시 222?”
“어떻게 알았나? 조금 큰 숫자 2 안에 작은 숫자 2가 있고 그 안에 더 작은 숫자 2가 있는 동그란, 그런 장식품 같은 것이네. 나는 그 고객에게 왜 이걸 저에게? 직접 전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네. 그랬더니 그 고객이…….”까지 말을 하는데 전화가 끊겼다. 나는 수화기에 대고 동료를 불렀다. 수화기는 삐 하는 소리만 들렸다.
다시 한번 은행에 가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몰래 들어가거나 무슨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일단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뭔가를 먹자고 형민이 말했다. 그래 먹어야 한다. 인간은 왜 먹어야 할까.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어째서 인간은 이렇게 시련에 시련을 겪어야만 할까. 인간은 비참함 속에서도 잠을 자고 먹어야 한다. 그렇게 인간은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 인간은 그간 진화를 하면서 반드시 먹지 않아도 되는 양의 음식도 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 덕에 비만이 오고 병을 얻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가 죽어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먹어야 한다. 기운을 내려면 먹어야 한다고 주위에서 말한다.
당사자는 같이 따라 죽고 싶은데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잠에 이끌려 세상모르고 쿨쿨 잠을 자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체 프로그램은 먹기를 강요하고 어디라도 좋으니 엎드려 잠들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허기가 강력하게 몰려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