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5.
우리는 차에 가서 편의점에서 사 온 마라탕 면을 들고 왔다. 거리의 모습은 조금 더 평온해진 것 같았다. 아직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치우고 있지만 처음의 난장판에서는 벗어났다. 그러나 곳곳에서 시위의 냄새가 진동했다. 사람들은 정부에서 살포한 약품을 흡입하고 쓰러져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추궁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 같은 말을 정부는 총리나 장관을 통해서 발표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같은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고위급에서 누군가 나서서 저의 책임입니다,라는 말을 사람들을 원했다. 타이틀만이 아닌, 진짜 책임자를 사람들은 바랐다. 하지만 그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시위의 규모가 나날이 거세졌다. 이러다간 정부에서 계엄령을 발동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양손에 마라탕 면을 들고 집으로 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것을 먹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웃기지만 어쩔 수 없다. 살기 싫어도 먹어야 한다. 죽으려면 먹고 힘을 내서 죽어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내와 처제를 찾아야 한다.
빌라는 아주 견고한 집이다. 튼튼하고 외부의 침투에 방어가 제대로 되게 설계되었다. 밖에서 보면 그저 집이지만 사실 이곳은 요새와도 흡사했다. 무기를 들고 침략을 한다고 해도 견딜 수 있게 잘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아내의 아버지가 많은 돈을 빌려줬다. 장인에게 연락을 해야 할까. 장인이 아끼는,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두 딸이 모두 실종이 되었다. 세상에 종말이 온다면 요란하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종말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 뱃교라는 종교인 같은 사람들.
종말은 크고 요란하고 한 번에 쿵 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들여 사람들을 조금씩 죽여가거나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종말이란 그렇게 온다. 피부에 곰팡이가 피어나듯이. 지구의 종말이라지만 인간의 종말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인간만 놓고 보자면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도 죽을 때 한 번에 죽는 경우는 드물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고통스럽게 종말을 맞이한다.
그러나 서서히 오는 종말과는 달리 처제가 아내의 친구라는 여자와 함께 한 번에 쿵 하며 사라졌다. 아내 역시 출장을 간다고 나가서 사라졌다. 아내는 이 마을 어딘가에 있다고 했으니 처제도 마을을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인에게 종말이 왔다고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니 뱃교라는 종교단체도 궁금했다. 박쥐를 믿는 종료라니.
형민은 수돗물을 받아서 끓이려고 하는데 수돗물에서 아직 죽음의 냄새가 났다. 이 도시의 수도 국에서 아직 정화처리 작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이토록 냄새가 남아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냄새는 아직도 고양했다. 처제가 샤워를 할 때 맡았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냄새가 심했다.
그런데, 잠깐. 이상하다, 나는 후각을 잃어버렸다. 의사에게 진단까지 받았다. 그 자리에 아내와 같이 있었다. 지금은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게 아주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 문을 열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아내와 처제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