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7.
나는 초등학생이었음에도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좀 더 어릴 때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술 취한 사람이 난동을 부리는 걸 막다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운이 없게도 난잡하게 휘두르는 칼에 찔리고 말았다. 그럴 일도 아닌데 출혈이 심하게 났고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숨을 거두었다. 뉴스에 짤막하게 난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 누구도 아버지에 대해서 이해를 한다거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지는 않았다. 왜 나서서 사고를 당했을까 같은 반응들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의 보험금으로 이사를 해서 작은 분식집을 했다. 나 때문에 병원에 가까운 곳에 집을 얻고 일하는 곳을 열어야 했다. 분식집을 했지만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 거와 많은 양의 음식을 맛있게 준비하는 건 다른 일이었다. 손님은 없고 공짜로 먹고 가려는 아이들만 있었다. 그들 중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점점 말라갔고 힘들어했다. 가끔 몇 초간 정신이 나가서 쓰러졌을 때 어머니는 나를 업고 병원으로 갔다. 왕왕 쓰러지니 가다가 깨어날 거라는 걸 알지만 어미는 내가 어떻게 될까 봐 병원으로 일단 업고 갔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키도 크고 덩치도 커졌다. 어머니는 매일이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시간에 치이고 노동에 치이고 모든 것에 치였다. 먹는 음식에도 치여 먹으면 먹을수록 전부 토하게 되었다. 결국 어머니는 음식을 거부했다. 조금이라도 먹으면 더 많은 양을 토해냈다. 그리고 영양실조로 빼빼 마른 앙상한 모습으로 잠을 자다가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살다가 그대로 고요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어쩌면 홀로 지내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나라는 존재는 방해만 될 뿐이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만 살았다. 대학교 때 아버지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상경해서 대학을 다녔는데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가 삶을 비관하고 난동을 일으켰다. 한 여자를 잡아서 목에 칼을 대고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길 수 있게 대통령을 불러 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왜 거기에 나서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냐며 나 역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 나는 아버지처럼 그 강도에게 다가갔다. 나는 이대로 죽어도 상관이 없었다. 길지 않은 삶을 지내는 동안 몇 번이나 죽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바에는 저 여자를 구하고 내가 대신 죽는 것이 나았다. 그때는 그런 생각이 강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남자에게 몸을 날렸다. 아아악 하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는 그 남자에게서 떨어졌지만 남자는 칼을 나에게 휘둘렀다.
그때 나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사람들이 남자를 붙잡았고 여자는 나를 붙들고 막 울었다. 나는 사실 여자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아니 무의식적으로 몸이 남자에게로 날아간 것이다. 의식은 멈춰있으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의식 그 너머의 무의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의식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대로 나의 몸을 움직였다.
나는 몇 초 있다가 정신이 들었고 여자는 마스카라가 번진 얼굴로 나의 얼굴을 감사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그러면 안 되지만 웃었다. 그때 여자도 같이 따라 웃었다. 119가 와서 나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여자가 나와 동행을 했다. 나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작고 따뜻한 손이 나의 손아귀에 느껴졌다. 그 여자가 아령이, 나의 아내였다. 아내는 그날따라 차가 카센터에 들어가서 지하철로 이동을 하다가 그 사고를 당했다. 아내와 나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나의 병력에 대해서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그날 아내는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날 지하철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도 둘 다 마니아 적으로 좋아해서 일주일에 5일을 영화를 보며 보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 상영 시간 동안은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신을 잃는다 해도 몇 초 지나면 정신이 돌아오니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적어도 나 때문에 소동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가 정신을 잃은 적은 없었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누군가와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친구가 없었다. 나와 친구가 되면 친구도 따돌림을 당했다. 병신하고 같이 노는 친구라고. 아내를 만나고 나서부터 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하지 않았던, 참고 있었던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내는 나의 눈을 보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이상하지만 사랑을 하게 되고 난 후부터는 정신을 잃는 증상이 사라졌다.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일반적인, 고리타분한 부부가 될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