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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1

2장 1일째


41.


 오너는 직원들에게 정장을 입고 출근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고객과의 만남과 마찰이 거의 없고(몇 명만 고객과 미팅을 거치면 된다) 비교적 자율적인 직업군임에도 불구하고 오너는 직원들이 정장을 입기를 바라고 있었고 직원들은 오너의 말에 불만 섞인 소리 없이 잘 따랐다. 오너는 때때로 정장이 주는 이미지 메이킹에 대해서도 곧 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옷을 좋아하는 오너는 회식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지금 남자들이 환장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자신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가 아주 초짜 시절의 디자이너였을 때, 리처드 기어의 초기 작품인 ‘아메리칸 지골로’를 찍을 당시 의상 팀을 맡았지. 꽤 긴장이 되었겠지. 당시 리처드 기어는 신인임에도 전 세계 여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섹시가이였으니까 말이지. 실제로 이전의 정장이라는 건 고리타분하고 근엄의 상징이 되어 있었지. 아르마니는 자신이 디자인한 정장을 리처드 기어에 입혀서 영화 속에 등장을 시켰던 거야. 영화 속에 등장한 리처드 기어를 보고 세계의 여자들은 외쳤지. 아니! 양복도 이렇게 섹시할 수가 있다니!라고 말이지. 이후에 리처드 기어와 아르마니는 사람들을, 정확히는 전 세계의 여자들을 주방에서 상영관 앞으로 불러들이는 큰 역할을 하게 된 거야. 슈트라고 불리는 정장은 이후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 앞일은 모른다는 거야.”


 오너의 정장에 대한 믿음은 특별했다. 정장을 잘 차려입은 사람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도 확실하고 목적지향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믿고 있었다. 직원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이봐, 고마동. 자넨 정장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네.”오너는 마동에게 그런 말을 종종, 그것도 큰 소리로 말했다. 다른 직원들도 그런 말을 마동에게 자주 했다.     


 고. 마. 동.

 이름이 우스꽝스러워 어린 시절, 이름에 관한 별명이나 에피소드가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한데 이름에 관련된 기억은 없다. 마동은 초등학교가 있던 고향을 생각하면 19세기 같은 시대에 지어진 건물과 방앗간, 폐쇄되어버린 탈곡 공장과 다량으로 돼지를 키우던 축사와 냄새나던 담벼락, 정리되지 않았던 길거리를 휘잉 돌아다니던 바람이 몰고 온 먼지만 떠올랐다.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 버스나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왔던 것이 분명한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긴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왔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아이들과 재미있게 지냈다거나 숙제를 했다거나 마당에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한 기억은 마동의 머릿속 어느 구간에서도 제대로 기억해주지 않았다. 지금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그때에도 비슷하게 떠 있었겠지만, 마동의 머릿속의 태양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무채색의 반공 포스터처럼 그저 미미하고 암울하게 재생될 뿐이었다. 대학시절 마동은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을 잘해주었지만 인간관계가 그리 폭넓은 인간은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였고 그런 모습 때문에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대학교 2학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휴학을 하고 여름이 시작되는 5월에 입대를 했고 제대 후 졸업도 하지 않고 바로 지금의 회사에 면접을 거쳐 입사해 버렸다. 대학교 일 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하여 대구에 있는 육군 50사에 보병으로 제대를 마쳤다. 육군에서 2년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이름 때문에 점호시간에 자주 불렸다. 이등병의 새벽 2시, 부사수로 초소 근무를 하던 중 하늘에 뜬 달을 보면서 마동은 생각에 잠기도 말았다. 사수인 상병 5호봉은 앉아서 편안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것이 이름이다. 태어남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더불어 부여받은 이름도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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