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3.
어느 날 처제와 아내가 집에서 오랜만에 만났는데 또 싸우고 있었다. 싸웠다기보다 아내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처제는 도통 못 알아들겠다며 계속 반론을 했다.
그러니까 아정아, 인간은 원래 좋다와 싫다의 개념만 있었어. 애초에는 옳고 그름이 없었어.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싫은 거였어. 내가 좋아하는 것이 타인에게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는 의식 자체가 없었어. 그런데 노예제도가 생기면서 노예의 입장에서는 좋다 싫다가 아니라 주인이 하는 행동이나 말, 그리고 의식의 옳고 그름으로 보였던 거야.
니체는 이런 관념이 왜 생겨났을까 의문을 가졌던 거지. 그랬더니 이 모든 것들이 기독교가 생겨나서 옳고 그름을 인간이 판단하게 된 거야. 인간은 옳고 그름을 나눠서는 안 된다는 거야. 왜냐하면 내가 옳은 것이 너에게는 그른 게 될 수 있으니까. 내가 아정이 너 새 옷을 가져가서 입으면 옳지 못한 것이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이거든. 이걸 나와 너, 좋다와 싫다 로만 나눠야 하는데 그 속에 옳으냐. 그르냐. 같은 것들이 끼어들면 복잡해진다는 거야.
불필요한 거라는 거지. 옳고 그름 따위는 이 옳고 그름이 기독교 때문에, 하느님이라는 매개를 통해 옳고 그름을 임의로 나누는 거야. 그냥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야. 그럼 간단명료해지지. 그래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한 거야. 신이 죽으면 기독교도 죽는 것이고 그러면 인간이 내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살아갈 필요가 없어.
그러자 처제는 왜 그래야 해?라고 물으면 아내는 또 처음부터 이야길 했고 처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겠다는 듯 한 표정이지만 아내가 말을 끝내면 다른 질문을 했지만 질문의 끝은 늘 비슷했다.
신이란 그저 인간이 믿고 의지해야 할 어떤 관념을 만들어내기 위해 탄생시킨 무형에 가까운 거잖아. 그래서 신은 죽을 수가 없는 거야.
인간이 만들어 냈으면 죽을 수 있잖아.
아니야 잘 봐. 거대 기업도 인간이 만들었잖아. 기업은 신보다 더 죽이기 쉽고 눈에도 보이잖아. 하지만 기업을 인간이 만들었어도 죽일 수 없듯이 신 역시 인간이 죽일 수가 없어. 지금은 너무나 많은 인간들이 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야.
그럼 어떻게 해? 신을 믿는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거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야기가 산으로 들로 마구 갔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나에게 가족은 아내와 처제뿐이기 때문이다. 귀엽고, 예쁜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두 사람은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내와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처제가 우리와 가까워졌다. 결혼하기 전에는 처제도 장인도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고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다.
나는 아내와 처제를 꼭 찾아야 한다. 찾아와야 한다. 녀석은 기침이 잦아들었고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형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연기는 아직도 그대로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저 연기는 무엇일까요?”
“저 움직이지 않는 연기도 시스템에 의해서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조종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원래는 정부에서 전쟁에 사용하려고 개발한 연기였데요. 그런데 저 은행에 있는 집단에서 의해 사용되고 있어요.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일반 시민에게 사용을 하고 있다구요. 군에서는 개발한 무기를 이렇게 대 놓고 사용을 하거나 실험을 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비밀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거리에 사람들이 없어지고 잠잠해지면 연기도 순식간에 사라질 거예요. 그리고 쓰러졌던 사람들도 없을 거구요.” 사라의 말을 듣고 벌레 전문가는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