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7.
인간은 생리작용을 해야 한다. 매일 소변을 보고 대변을 본다. 그걸 하지 못하면 큰일이 난다. 우리는 시험을 보다가 참을 대로 참다못해 결국 냅다 일어나서 화장실로 달려가 본 경험이 있다. 그럴 때 화장실을 찾지 못하거나 문이 닫혀 있으면 그만 소변을 아무 때나 보거나 그냥 그 자리에서 옷을 입은 채로 대변을 보기도 한다. 모두가 이런 생리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생활 전반에 화장실이 있다. 인간 세계에 화장실이 없다면 정말 사람들은 혼란에 휩싸일지 모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니면 뭐든 더럽게 사용을 하고 망가트리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에서도 점차 줄어드는 것들이 늘어났다. 어떻든 생물은 배설을 해야 한다. 그걸 우리는 평소에 간과하며 지낸다. 배설하지 않는 생물은 지구상에 아메바 정도밖에 없다.
형민이가 화장실에 갔다. 일단 해보자. 그러나 녀석이 화장실에 간지 5분 만에 왔다. 화장실이 전부 사용금지하고 했다. 그리고 화장실 앞에는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녀석은 경비원에게 참을 수 없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꼭 사용을 해야 한다면 15층 화장실은 사용이 가능하니 그쪽으로 가라고 했다.
우리는 동료를 두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상담이 덜 끝났다고 했는데도 경비원들이 오더니 우리를 은행 밖으로 내보냈다. 은행은 마치 하나의 큰 벌레 같았다. 필요 없는 자들은 뱉어내고 먹고 싶은 건 삼키는 거대한 벌레 같았다. 벌레는 우리를 뱉어냈다. 동료는 필요한지 다시 끌고 가버렸다.
자네라는 존재의 아름다움, 즉 미질 때문에 암흑으로 빠져들 거야. 은행을 나올 때 누군가 나의 등에 대고 한 말이었지만 녀석과 사라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환청일까.
[우리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에서 우리는 지금은 헤어지더라도 만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바꾼다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랑은 증오보다 무섭다. 사랑을 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 미친 듯한, 미칠 듯한 사랑, 증오는 감히 따라오지 못한다]
우리는 거실에 앉았다. 방에서 아내가 적어 놓은 글을 봤다. 이 글은 무슨 뜻일까. 아무런 뜻이 없는 것일까. 에세이에 쓰려고 적어 놓은 글일까. 아내와 나는 지금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 있는 것일까, 아내뿐만 아니라 처제 역시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사라진 것일까. 단지 옆에 있지만 보이지 않을 뿐일까. 처제가 사라지고 난 후 녀석은 상당히 이성적이 되었다. 아마 감정으로 치닫는 다면 처제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녀석의 얼굴은 상당한 의지로 다부졌다.
우리는 거실의 소파에 세 명이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이제 녀석과 사라가 처제와 아내의 자리에 대신 들어왔다. 우리는 일단 뭘 좀 먹어야 했다. 나의 얼굴은 아직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 세상의 시름은 온통 짊어진 얼굴이었다. 우리는 앉아서 마라탕을 또 부셔 먹었다. 물이 없어 캔 음료를 마셨다. 어떻든 답은 은행에 있다고 사라가 말했다. 그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동료가 화장실에 숨겨 놓은 물건을 가져오지 못했다.
나는 방으로 올라와서 문을 잠그고 상자를 꺼냈다. 이데아의 다정한 소리가 들렸다. 상자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아름다운 빛이 나의 손에 닿았다. 이 기분, 이 느낌, 마치 잊고 있었던 오래된 품속에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상자를 여니 오 아름다운 이대아가 나를 반겼다. 이데아는 마치 몇 백 니트의 불빛을 내며 나에게 안겼다. 나는 이데아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거야.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오래 있다 보면 명순응 덕분에 길을 찾게 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들이야,라고 아내가 말했다. 그래, 나의 아내, 아내는 분명 이 마을 어딘가에 있고 거기서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형님, 형님!”
쿵쿵쿵.
녀석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잠들었다고 했다.
“바로 내려갈 테니 거실에 거 있어.” 나는 말했다.
눈을 떠보니 이데아가 없어졌다.
뭐야! 나는 정말 놀랐다. 상자는 옆에 있었지만 열린 상태였다.
누군가 들어왔나?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문은 잠그면 밖에서 억지로 연다고 해서 열리지 않는다.
이데아마저 사라졌다.
이데아는 나의 몸속에서 태어난 나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
이데아를 품고 잠이 들었는데 이데아가 사라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