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352번 버스가 와서 탔을 뿐이다 1

소설

by 교관


1.


오늘은 휴무인데 출근을 했다. 어제 직장 상사에게 된통 혼이 났다. 내가 작성한 서류들은 전부 다시 밀렸다. 덕분에 직속상관들까지 불려 가서 혼이 났다. 언제나 그렇다. 나는 자책과 책망을 골고루 하며 자신감을 발로 밀어내고 있었다.


나도 생각을 한다. 나를 입사시킨 이 회사가 이상하다고. 나는 꾸준하게 조직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오고 있었던 듯했다. 결국엔 오늘 출근을 하여 잘못된 서류를 다시 작성을 해서 저녁 7시까지는 대리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확답을 받아야 했다.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엑셀 작업이 불가능한 대리마저 나 때문에 오늘은 컴퓨터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 움직여야 했다.


책상에 버려진 꾸러미처럼 앉아서 하루 종일 서류를 작성했다.


하루가 휙 지나갔다.


대리와 몇 번의 교류 끝에 서류는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대리가 대부분 정정 작업을 해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대리가 보기에도 나는 한심하고 조금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인간인가 보다. 어딘가에서 급하게 허기를 때우고 한 시간 동안 거닐며 땀이 등으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오니 딱 맞게 막차인 28-6325번이 왔다. 정류장에는 다른 날과 달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휴일이라 그런가 보다.


날이 눅눅하다. 꺼내 놓은 지 삼일 된 카스텔라 같았다. 대기 중의 수분 다발이 돌아다니다가 나의 목에 마구 들러붙어서 찍찍거리는 느낌은 불쾌했고 얼굴의 표정을 하나로 만들었다. 무더운 여름의 레인 시즌은 늘 이렇다. 지금도 비가 내리다 잠시 소강상태다. 그러한 대기는 언제든지 뱉어낼지 모르는 꿉꿉함을 머금고 있었다.


28-6352번 버스가 다가와서 천천히 정차를 했다. 왜 이 도시는 버스의 번호를 저런 식으로 만들었을까. 이십팔다시륙삼이오. 발음하기도 아주 힘들다. 내가 집으로 갈 때 타는 버스만 저러한 번호다.


막차인 시간대라서 버스에는 불이 밝지 않았다. 그럼에도 버스기사는 결의에 찬 모습으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선글라스와 버스기사는 왠지 어울린다. 커피와 담배가 어울리는 것처럼.


버스에는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한 명, 그리고 이제 술을 마시러 약속 장소로 나가는지 20대 중반의 외설스럽게 생긴 남자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대고 약속 장소와 그 장소에 나오는 여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오늘 술자리에서 여자들을 다 꼬셔버릴 기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걸, 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녀석이 나를 쳐다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나는 금세 무표정을 만들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소리도 없이 정차하고 외설스럽게 떠들어 대던 녀석이 내리고 나니 버스 안은 그야말로 적막이 흘렀다.


움직이는 버스 안이 적막하다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앞에 앉아있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은 전혀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버스 안은 에어컨디셔너를 꺼버리고 나니 텁텁한 공기가 적막과 함께 버스 안의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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