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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9. 2023

26. 오블라디 오블라다

소설

   


 배가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몸에서 혼이 연기가 되어 빠져나간 사람들처럼 흐물렁 거렸다. 육지에 발을 디뎠을 때 마치 콜럼버스가 된 기분이었다.      


 도동항에 내려서 든 생각은 정말 바다가 맑다는 것이다. 비 온 후 토란잎에 또로롱 맺힌 물방울에서만 보던 맑음이었다. 바닷속으로 물고기들이 여봐란듯이 돌아다니고 오징어도 보였다.     


 득재가 도동항에 이미 나와 있다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득재네 집은 좁아서 득재가 우리의 숙소를 따로 잡아 주었다. 여관이지만 여인숙 같은, 침대는 없지만 욕실이 딸려 있는, 창문을 열면 사람들의 생활을 바로 볼 수 있는 묘한 여관이었다.     


 도동 항구에서는 오징어를 바로 회를 떠 주거나 곧바로 튀김을 해서 팔았다. 우리는 도동 항구의 한 아주머니가 파는 오징어 코너에 나란히 앉아서 오징어를 먹었다. 한 입 먹자마자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열몇 살 인생에 이렇게 맛있는 튀김을 먹어보다니. 오징어튀김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여긴 일주일 신문이 한꺼번에 들어와. 일주일 전의 소식을 받아보는 곳이지. 조금은 시간에 대해서 육지와는 다른 느낌이야. 하지만 일기예보는 칼 같아야 해. 칼 알지?”


 벙벙하게 듣고 있던 우리를 보며 득재가 오징어튀김을 씹어 먹고 소주를 털어 넣었다. 소주를 아무리 마셨지만 술이 취하지 않았다. 기철이는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 무엇인가를 적었다. 기철이는 매일 시나 글을 적는다. 그것에 있어서 후퇴라든가 멈춤이 없다.    

 

 “양질의 전환이 필요해. 아인슈타인도 알려진 논문 이외에 다른 분야의 눈문도 엄청나데. 일단은 많은 양의 글을 적어 놓는다. 진실하게 적을 필요는 없어. 하지만 정직하게 적는 거야. 그러고 나면 그 속에서 뭐가 나와도 나와. 비틀스를 보면 양질의 전환을 잘 알 수 있어. 비틀스가 보브 딜런을 보기 전에는 그저 여자와 빠른 비트의 노래만 부른 보이밴드에 속하지 않았어. 하지만 보브 딜런의 가사에 담긴 뜻을 존 레넌이 보았던 거야. 존 레넌은 보브 딜런의 모자를 쓰고 다닐 만큼 그를 찬양했어. 그리고 엄청난 양의 곡을 작곡했지. 100개의 귤 속에서 건진 귤이 10개의 귤 속에서 건진 귤보다 맛있는 귤을 건질 확률이 높거든.”


 기철이는 술을 많이 마셨다. 오징어 튀김도 많이 먹지 않고 소주만 계속 마셨다. 녀석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외국에는 한 번도 못 나가 봤지만 마치 외국의 어느 해변의 마을에 온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넉넉했고 자유로웠고 시간을 천천히 음미했다. 여행객들은 그 사이로 들어가 앉아서 오징어를 씹으며 술을 마시고 꺼져가는 하루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코앞에 페리호가 정박해 있었고 어선도 나란히 있고 갈매기들은 떨어진 오징어의 내장을 주워 먹으려는 듯 기웃거리고 바다는 아기의 눈동자처럼 깨끗했다.      


 우리의 마음도 풍족했다.




오브라디 오브라다 https://youtu.be/_Paqe2-BCYM

el perro bea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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