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나라 10

소설

by 교관


10.

곧 무차별적으로 석양의 빛이 비현실적이게 세상에 내려앉았다. 그는 차양막을 만들었던 손을 내리고 그 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주위의 소음도, 소음을 만들어내던 그 어떤 무엇도 서서히 사라졌다. 승섭이의 눈에 붉은 석양빛과 흐르는 강과 강 저편의 들판이 보였다. 마치 책 속의 아주 멀리 동떨어진 배후의 풍경이 되었다. 빅브라더 같던 마천루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자동차들이 사라졌다. 가로등이 사라졌고 전봇대가 서서히 사라졌다.


승섭이가 앉아있는 벤치는 시멘트였지만 완연히 목재로만 만들어진 오래된 벤치로 바뀌어 갔다. 승섭이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불확실한 미래도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사라져감’을 느꼈다. 진정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너희는 누구지?

승섭이는 네 명의 라이더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헬멧을 하나씩 벗었다. 고글을 벗었다. 승섭이의 눈에 들어오는 그들의 얼굴은 고양이 얼굴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언어를 했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승섭이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저씨, 엄마가 아저씨를 모시고 오래요. 그곳으로 가요. 밥 먹으러 가요.


그러고 보니 승섭이는 허기가 져 온다는 걸 느꼈다. 배가 고팠다.


난 저기 ‘밥퍼’에서.


승섭이는 밥퍼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오리들의 모습만 보였다. 오리를 쫓는 힘없는 늙은 개의 모습도 보였다. 몹시 평화로웠다.


자, 여기 뒤에 타세요. 엄마가 아저씨께 보여줄 게 있대요.


맨 앞의 자전거를 타던 고양이가 뒷자리의 안장을 두드렸다. 안톤 체호프의 말이 떠올랐다. 1막에서 권총이 등장했다면 3막에서는 반드시 총알이 발사되어야 한다. 승섭이는 총알을 발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서 자전거 뒤에 탔다. 그들은 헬멧을 쓰고 고글을 끼고 꽉 잡으라고 승섭에게 말했다.


자전거는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달렸다. 세상을 물들인 붉은 석양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실체의 가능성이 하나씩 소멸해 갔다. 베토벤의 소나타 작품 31번의 2와 3 사이로 자전거는 들어갔다. 빛의 기둥이 강물을 갈랐고 자전거는 그 갈라진 강물 속을 달렸다.


원칙의 질량과 무게도 가늠할 수 없었다. 이름 모를 풀들이 그의 다리에 스쳤다. 승섭이는 고양이를 꽉 잡았다. 그 어린 고양이의 보슬한 보풀 같은 기분 좋음이 느껴졌다.

아저씨, 엄마가 아저씨를 만나면 꼭 전해 달래요. 비가 와도 안전하다고요. 그래서 고맙대요.


공복이 밀려왔다. 맛있는 냄새가 승섭의 몸을 감쌌다. 아궁이에서 막 꺼낸 빵의 냄새, 콩나물이 들어간 깔끔한 국 그리고 에스프레소의 향, 스크램블 에그와 한편에 오른 갓 지어낸 김이 나는 밥 냄새가 그에게 전해졌다. 자전거는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다시 펼쳐진 숲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스쳐가는 나무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앞에서 옆을 지나 뒤로 휙휙 지나갔다. 숲은 그야말로 고요했고 자전가의 페달을 밟는 소리만 그에게 들릴 뿐이었다.


숲 속의 길은 아주 멀리까지 곧게 뻗어 있었다. 이곳은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하여 사람을 봐도 전혀 놀라지 않고 동물들이 하던 일을 계속할 것만 같았다. 자전거는 더 속력을 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길고 긴 숲 속의 끝에 다다랐다. 거대한 빛 웅덩이가 정면에 보였고 자전거는 그 속을 관통했다.

통과하는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거대한 빛을 통과하니 큰 팻말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고양이 세계입니다. 이곳은 자신의 문제점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환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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