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9.
승섭이는 멍하게 앉아 있을 때가 많았고 회사는 끝내 그를 일 년 동안의 월급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재취업의 길을 열어준다는 이유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승섭이는 오늘도 강변의 벤치에 앉아서 자전거 행렬을 보고 있었다. 서서히 석양이 졌다. 식육점에서나 볼 법한 붉은빛의 노을은 아름다웠다. 그는 조금 넋이 나간 모습으로 그 광경을 보라 보았다.
역광을 헤치며 고글과 멋진 헬멧을 쓰고 라이딩을 하는 한 무리의 자전거들이 휙휙 지나갔다. 그는 이제 빠르게 지나치는 것과는 역행하는 듯 느리게 변했다. 천천히, 그의 시간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두 배나 느렸고 천천히 흘렀다.
오직 배가 고프면 벤치에서 일어나서 ‘밥퍼’로 향했다. 퇴직금처럼 받은 돈은 밥퍼에 오는 독거노인들에게 다 줘버렸다. 밥퍼로 향하는 걸음걸이도 너무나 느려서 늘 마지막에 밥을 타 먹었다. 사람들은 승섭이가 천천히 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밥퍼의 사람들은 그에게 자신들의 반찬을 덜어주기도 했다.
석양은 붉을 대로 붉어서 대지에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마치 거대한 초현실 같았다. 승섭이는 노을 속에 시선을 몽땅 뺏기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야아아아옹, 야아 아 아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봤던 소리였다. 승섭이는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벤치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벤치 주위를 일어나서 두리번거렸다.
야아 아아 아옹. 야아 아아 아옹.
소리의 주인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는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승섭이는 어렴풋이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반가웠다. 하지만 소리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흘러나와 강물에 흩뿌려지는 몽환의 잔해처럼 잠깐 들렸을 뿐이었다.
승섭이는 다시 벤치에 앉았다. 그의 앞에 자전거를 타는 한 무리의 라이너들이 석양의 빛을 등지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양의 빛을 가리는 사람들이 누군지 승섭이는 고개를 들어서 쳐다보았다. 네 명의 라이너들은 가던 길을 가지 않고 죽 서서 승섭이를 바라보았다. 석양은 그들의 등 뒤에서 유난히 붉게 타올랐고 하늘을 물들였다.
바람이 불어와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비 온 후 새벽의 냄새가 바람에 딸려 승섭이의 폐 속으로 들어찼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차양막을 만들었다. 헬멧을 쓰고 고글을 끼고 있어서 누구인지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사람들과 알 길이 없었다. 많은 라이딩을 즐기는 자전거의 무리가 지나가야 할 테지만 강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시간이 죽어버린 것처럼.
아저씨, 저희들이에요.
네 명의 라이더들 중에 누군가 그에게 말을 했다. 승섭이는 여전히 오른손을 이마에 대고 차양막을 만든 채 말소리가 들리는 사람 쪽으로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석양은 붉게 타오르고 그들은 석양에 흡수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바람이 또 한 차례 불었다. 지나간 시간의 냄새가 났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 육체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