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일은 점점 많아졌다. 어머니는 그가 너무 일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조금은 두려웠다. 자신의 아들이 시간의 저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단란하게 앉아서 밥을 먹어본지도 오래되었다. 휴일에도 일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퇴근시간도 너무 늦었다. 보통 10시를 넘어야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을 제대로 먹는지 점점 말라갔다.
목요일 오후 대용량의 작업 분을 USB에 집어넣고 회사를 나왔다. 밤 11시가 되었다. 저녁도 굶었다. 집에서 어머니에게 밥을 차려달라 하기도 미안했다. 마천루의 이곳도 밤이 되니 불이 하나둘씩 꺼지고 고요해졌다. 밤이 도래하면 선종로 사거리의 가로등 밑에는 포장마차가 들어선다. 대학교 시절 얼마나 많이 포장마차를 찾았던가. 포장마차를 지나칠 때 따끈한 국물의 냄새가 승섭이를 멈추게 했다. 그 냄새는 그에게서 허기라는 게 무엇인지 여실이 인식시켜 주었다.
승섭이는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락국수 한 그릇과 닭발 한 접시를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가락국수가 나오고 가는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체내의 세포들이 아우성이었다. 가락국수 한 젓가락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그동안 굶어가며 일하느라, 단백질이니 무기질을 서로에게 조금씩 나눠주며 버티고 있던 장기의 세포들이 인슐린을 분비하고 가락국수로 인해 체내에 들어온 탄수화물과 나트륨을 골고루 뿌리기 시작했다.
소주를 한 잔 마셨다. 알싸했다. 포장마차에 손님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목요일 밤이면 많은 샐러리맨들이 이곳에 앉아서 코가 빨개져서 소주를 마시는데 오늘은 이상했다. 포장마차는 다양한 삶이 피어오르는 곳이다. 마천루 속에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서로 간의 경쟁에 지칠 대로 지쳐 이곳에 모여들어 낮 동안 쌓인 고무적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것이다.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많은 소주를 마셔댄다.
그는 담배를 찾아서 한 개비 피워 물었다. 담배연기는 고스트가 된 흐릿한 영혼처럼 포장마차 안에 흩날리다 사라졌다. 모든 곳이 금연인 반면에 아직 포장마차까지는 마수가 뻗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마음 놓고 담배를 쪽 빨아 당겨서 연기를 내뿜을 수 있다.
가락국수를 한 그릇 먹고 소주를 반 병이나 마셨지만 허기가 계속 밀려왔다. 허기는 태초에 세계를 휩쓸어 버리려 하는 거대한 광풍처럼 그의 뱃속에서 올라왔다. 허기는 어두운 골목 뒤에 남겨진 차가운 어둠 같았다. 승섭이는 닭발을 하나 집어 먹었다. 양념이 배인 닭발을 어금니로 씹었다. 매운 양념 때문에 아밀라아제가 많이 나왔고 몸에 열기가 났다. 그 열기가 마치 골목 안의 차가운 어둠을 밀어내려고 했다.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술을 너무 마시면 집에 가서 하던 작업을 하지 못한다. 그의 성격상 회사 내 컴퓨터에 자료를 넣어둘 수도 없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모든 자료는 정장 안 와이셔츠의 주머니에 잘 들어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손님도 없는데 분주하게 문어를 삶고 파를 다듬었다. 곧 새벽인데 이 시간까지 손님들이 없으면... 까지 생각하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소주를 한 잔 또 비웠다. 이렇게 소주가 잘 들어가다니 본인도 놀랐다. 회식자리에서도 소주 반 병 이상 마셔 본 적이 없었는데 벌써 한 병 가까이 마셨다. 그렇지만 취기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기분이 묘했다. 이것이 술이 받는다.라고 느끼는 날일까. 닭발은 매콤했고 깻잎에 싸 먹으니 허기가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단순히 기분뿐일지라도 승섭이는 닭발을 집어서 먹고 또 씹어 먹었다. 소주를 한 병 더 시키고 문어 삶은 것도 한 접시 시켰다. 삶은 문어 한 접시와 함께 계란말이가 서비스로 나왔다. 소주를 한 잔 또 마셨다.
포장마차의 천장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는 거세게 떨어져서 마치 포장마차의 천장을 뚫기라도 할 기세였다. 승섭이는 비가 그렇게 내리는데도 조급해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건 평소의 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