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
역시 소주 때문일까. 마음이 느긋했다. 비 때문에 집으로 가야 할 걱정 따위는 들지 않았다. 소주를 한 잔 또 마셨다. 빗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포장마차의 천장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도로에 고인 물을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의 소리가 한데 어울려 묘한 기운을 자아냈다.
곧 거리의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 것이고 신발이 빠져 사람들은 인상을 쓰게 될 것이다. 포장마차의 천으로 빗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빗물은 마치 사람들이 위로 오를 땐 힘겹게 오르다 떨어질 때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추락을 하듯 빠르게 떨어졌다.
한 밤의 거센 빗소리는 모든 것을 잠식했다. 문어를 초장에 찍어 먹었다. 삶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혔다. 소주를 한 잔 마셨다. 내일부터는 정말 바빠질지도 모른다. 본부장과 함께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입사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서 얻어낸 결과였다. 동기들은 그의 실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렇지만 몇 기 앞서 들어온 선배들에게 그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조직사회는 실력이 우선이다. 실력만이 자신이 속한 조직을 타 조직보다 우월하게 만들고 부와 명예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집에 가서 한 시간만 작업을 하면 내일 프레젠테이션의 모든 준비는 끝난다. 와이셔츠 주머니를 보았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멋있어야 했지만 이 엄청나게 떨어지는 비는 저 지대 도로의 하수구를 역류시켜고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아두는 완력을 가졌다.
빗물은 물웅덩이를 빠르게 만들고 지층의 밑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갈 것이다. 비가 내리면 세상은 단편적이 된다. 복잡하지만 고요하게 만들기도 했다. 비의 소리는 오래된 기억의 집적 같았다. 승섭이는 어째서 이런 생각들이 드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주를 한 잔 비웠다.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었다. 입으로 넣다가 조금 흘렸다. 음식을 흘리다니. 그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문어 접시 근처를 보니 소주를 네 병이나 마셨다. 그제야 머리가 어지러웠고 정신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아직 허기가 다 사라지지 않았다.
승섭이는 계란말이를 접시 채 들고 입으로 털어 넣었다. 볼이 볼록하게 계란말이를 씹어 먹었다. 평소의 그 답지 않게 계란말이를 먹었다. 볼을 볼록하게 만들어서 게걸스럽게 먹으니 허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허기란 정말 기이했다. 오래전에도 이렇게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을 때 으레 입안에 밥과 반찬을 잔뜩 집어넣고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네 병째 마지막 소주를 한 잔 털어 마셨다.
그는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올 때까지 삶은 문어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자신도 이렇게나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만취상태는 아니었다. 이대로도 집에서 작업을 끝마칠 것만 같았다. 포장마차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남은 돈은 됐다고 했다. 택시가 왔고 뛰어서 택시로 달려가서 문을 열고 뒷자리에 앉았다.
6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를 달려왔는데 비에 홀딱 젖어버렸다. 택시 안에 비 냄새가 가득했다. 비 비린내는 승섭이의 몸에 들러붙어 택시 안까지 들어왔다. 목적지를 말한 다음 승섭이는 택시의 소파에 등을 기댔다. 시간은 새벽 두 시였다. 정확히는 두 시 십이 분 사십 초, 사십일 초, 사십이 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