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두운 밤하늘에 물감을 마구 뿌려대는 것처럼 비가 떨어졌다. 도로에는 택시만 보일 뿐 낮 동안 도로를 가득 채웠던 그 어떤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비는 택시 위에도 떨어져 기이한 소리를 만들었다.
택시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다. AM뉴스를 주로 틀어놓는 택시에 비해 그가 불러 탄 택시 안에는 인도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새벽의 비 오는 택시 안에서 듣는 인도 음악은 현실감이 제로라고 해도 될 만큼 바다 위의 부표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빗소리가 줄어들었다. 멈추지 않을 것처럼 떨어지는 비는 기세가 꺾였다. 그의 집은 강과 저수지의 중간에 위치했다. 강과 저수지에 끼인 마을은 식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비가 몇 날 며칠 쏟아지면 모두들 걱정을 했다.
택시의 와이퍼가 멈췄다.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승섭이는 현실감이 떨어지고 감각이 다르게 퇴보해 가는 느낌이 들었다. 현대인이 소주 네 병을 마시고 썩 괜찮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것이다. 소주는 오래전보다 도수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현존하는 술 중에서 독하다면 독한 술이다.
첨단의 거대 조직 안에 들어와 있는 그로서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그가 생각하는 문화권 밖의 일이었다. 승섭이의 신경은 온통 프로젝트에 쏠려 있었다. 오늘은 술을 마시는 게 아니었다. 택시는 강변도로를 지나 서서히 우회하면서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가 쏟아진 거리는 한결 깨끗해졌다.
라디오에 또 다른 인도 음악이 나왔다. ‘나막 달리아’라는 가수라고 소개를 했다. 그동안 새벽에 인도 음악을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승섭이는 그런 생각마저도 하기 싫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노래의 음이 계속 그의 귓전에 와서 부딪혔다.
[학교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신발이 없어요. 동생과 나는 신발을 나눠 신어요. 내가 오전에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면 동생은 나를 기다려요. 학교가 마치면 나는 동생에게 신발을 주기 위해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요]
이런 내용의 노래라고 디제이는 소개를 했다. 오래전 인도의 꽤 유명한 영화를 노래화 한 것이라고도 소개를 했다. 흩날리던 빗줄기마저도 이제 뚝 그쳐서 하늘은 어두운 기운만 감돌았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오래전에 신축된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택시는 그곳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비 온 뒤 새벽의 기운이 강하게 풍기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내일은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서 회사에 도착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은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12시까지 계속된다. 본부장은 물론이고 그 위의 간부들까지 참석하는 자리다. 그의 부서에서는 기대가 컸다. 승섭이는 주머니 안의 메모리를 확인했다.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밀어 넣고 깍지를 끼고 손목을 풀어 주었다. 밖은 고요했고 당연하지만 어두웠다.
택시 안 역시 어두웠다. 택시는 새벽 두 시에 오르는 승객을 위해 최소한의 불빛을 택시 안에 켜놓았으며 택시 안에는 인도 음악이 나왔다. ‘나막 달리아’라는 가수의 목소리는 미스터리했다. 후렴구에 콧소리로 나지막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콧소리가 택시 안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와서 택시 안의 어둠에 흡수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