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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2. 2023

혁명가 그녀 4

소설


4.


 혁명가로서의 그녀는 나와 나란히 걸어 간지 30분 정도 지난 후 작은 공원 앞에서 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아주 정중하게 한 후 저만치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에게 그 서류를 건네주며 웃음기 걷힌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혁명가로서의 그녀는 또 다른 혁명사로서의 한 남자에게 혁명가로서의 서류를 전달해 주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고대의 중세마을에서 치러지는 경건한 의식 같았다. 혁명가로서의 그녀는 경건한 의식을 치른 후 혁명가로서의 그 남자를 보내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표정은 한껏 온화하게 보였으며 평온해 보였다.


 혁명가로서의 그녀는 나에게 식사를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나는 카페에서 먹은 커피와 맛없는 샌드위치로 적당하다고 했다. 혁명가로서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그럼 더운 음식을 먹으러 가요. 라며 나를 이끌었다.


 오래전 그날처럼.     


 나는 그녀에게 물어볼 말이 많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더운 음식을 먹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더 이상 혁명가로서의 그녀와 나 사이에 당겨질 거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인생이라고 하는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누군가 한 사람을 계속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대상에 대한 욕구나 소유욕은 폭력이고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는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한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는 말없이 더운 음식을 먹고 서로에게 잘 가라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혁명가로서의 그녀는 혁명가로의 길로 갔고, 나는 나의 길로 돌아왔다. 예전처럼 가슴이 아프다든가 먹먹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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