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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6. 2023

이 송 주 3

소설


3.


나는 기억이 없었다. 무슨 기억을 말하는 걸까. 나는 기억을 하느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주는 여지를 두고 나에게 피아노를 연주하여 아쿠아를 들려주었다. 그때는 그 연주가 아쿠아인지 몰랐지만 그 맑고 투명한 물방울 같은 연주는 송주를 닮았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미미하게 안타까운 모습도 느껴졌다. 송주는 연주를 마치고 나를 보며 아직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음, 바보.라고 송주가 말했다.


바보라니, 바보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내가 아이러니했다.


나 사실 5학년 이맘때에도 학교에 남아서 피아노 연습을 했어. 그때는 교내 반주하는 일이 많아서 연습을 해야 했거든. 집에서는 하기 싫었어. 집에 가면 엄마에게 늘 혼나곤 했어. 엄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런 엄마를 말리느라 아빠는 늘 쩔쩔맸어. 작년에 엄마한테 혼나는 게 싫어서 도망쳐 나오다가 문손잡이 같은 것에 걸려 팔이 찢어졌어. 너무 아팠지. 병원에서 꿰매고 난 후 물이 들어가면 안 된대. 물이 들어가면 곪는다고 말이야. 아빠가 약사니까 병원에서 아빠에게 신신당부를 했어. 피아노 연습도 덕분에 강력하게 하지 않아도 되었어. 작년에 학교에 남아서 연습을 하다가 늦어졌는데 비가 쏟아지는 거야. 아무도 없고, 비는 오고, 물이 찢어진 팔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고. 나는 갑자기 너무 무서웠어. 평소 같으면 비를 맞고 집으로 뛰어갔을 텐데. 한 번 무섭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이 무서운 거야. 곧 엉엉 울고 싶어졌어. 눈물이 막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 네가 저기 복도 끝에서 오더니 나에게 우산을 주면서 “나는 비 맞아도 돼”라고 하더니 운동장으로 뛰어가더라. 난 물어보고 싶었어. 도대체 학교에 그 시간까지 남아서 뭘 했냐고. 너 덕분에 나는 비 맞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어. 너 정말 기억이 안 나?


이상하다. 5학년이면 주번도 아닌데 나는 학교에 왜 남아 있었을까. 종종 집에 가기 싫어서 학교에 남아있곤 했지만 송주에게 우산을 줬다면 그날이 기억이 나야 했지만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어떤 오류가 있기에 기억이 안 나는 것일까.


이후 너를 관심 있게 봤어. 우산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너는 왜 그런지 나에게 오지 않더라.


너는 인기가 많잖아.


나의 말에 송주는 또 활짝 웃었다.


바보.


바보 아니라니까...


너 보니까 5학년 때 학교에 남아서 3학년 애들 만들기를 가끔 도와주는 모습을 봤어. 3학년 애들이 집에도 가지 못하고 남아서 만들기 하면서 힘들어할 때 네가 옆에서 도와주고 있더라.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해.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내가 찰흙이나 마분지 같은 것으로 만들기를 잘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담임의 딸이 3학년이었고 담임선생님은 종종 학교에 남아서 딸내미의 만들기를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러면 짜장면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나는 딱히 집에 일찍 가고픈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담임이 부탁하는 만들기를 도와주곤 했다. 날이 무척이나 더웠다. 밖에 비가 와서 음악실 안은 더 더운 것 같았다. 송주가 웃는데 앞머리 사이로 땀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손등으로 송주의 땀을 닦아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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