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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06. 2023

40. 길림성의 엘비스

소설

 


 우리는 짜장면보다 조금 더 비쌌던 볶음밥을 좋아했다. 기철이 녀석이 짜장면을 먹지 않는 이유도 있고 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볶음밥이 가지는 그 맛에 우리는 매료되어 있었다. 학교 건너편 동네의 골목으로 죽 들어가면 길림성이라는 오래된 중국집이 있었다.     

 

 중국집 주인아저씨는 볶음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직접 했던 아저씨는 주방을 유리로 다 보이게 하고 웍질 하는 모습을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했다. 길림성 아저씨의 팔뚝과 손은 웍에 댄 상처로 빠끔한 틈이 없었다.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불 앞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는 주방장만이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웍을 끊임없이 흔들어가며 밥알을 살아있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자만이 볶음밥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중국집 볶음밥은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야.” 아저씨가 왕왕했던 말이다. 길림성 아저씨의 볶음밥에는 짜장 따위는 곁들이지 않았다. 볶음밥이라는 건 짜장이 침투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닌 것이다.     


 볶음밥과 동급으로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기름에 튀겨낸 계란 프라이뿐이었다. 흰자는 바싹하게 튀겨지고 노른자는 그러데이션으로 흐르며 겉은 탱글탱글한 코팅으로 볶음밥과 나란히 놓일 수 있게 된다. 고온의 기름에서 앗 뜨거워 하며 후다닥 튀겨 나온 프라이.     


 그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고 그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길림성의 볶음밥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자주 와서 볶음밥을 먹으라고 길림성 아저씨는 우리에게 말했고 우리에겐 학생이라고 볶음밥 가격을 깎아 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길림성 아저씨의 철학이 담긴 볶음밥에 환장했다. 유리 벽 너머로 길림성 아저씨의 웍질을 보고 있으면 우리끼리 신이 났다. 대화도 필요 없고 오로지 파스가 덕지덕지 붙은, 흰 러닝셔츠로 가려지지 않는 어깨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을 했다.     


 테이블은 소설 1984에나 나올 법한, 윈스턴이 줄 서서 음식을 받아서 먹는 찌질하고 낡은 테이블에 물 컵은 팔각의 새가 프린팅 된 컵이었고 파리가 대형을 유지하며 비행을 했지만 그 모든 것을 물리칠 수 있는 볶음밥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돈이 생기면 길림성으로 가서 볶음밥을 먹었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식당에 세 번 가면 자신이 단골이라 여긴다. 그런 단골이 단골인 양 뭔가를 요구하면 진짜 단골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길림성 아저씨에게 우리는 최고의 단골이었다. 우리가 볶음밥을 주문하고 곱빼기로 담아 주었다.      


 불 맛이 가득한 살아있는 볶음밥을 입에 넣었을 때 그 기분과 황홀함.


 씹을수록 입안에서 퍼지는 볶음밥의 풍미.


 그때 살짝 단무지를 씹어 준다.


 이렇게 조화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그것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에 우리는 행복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었다. 그 행복은 마음속에서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저기요? 왜 저기는 보통 시켰는데 저렇게 많이 주죠?”라는 소리가 들리면 길림성 아저씨는 “아들들이에요”라며 일축했다. 길림성에는 티브이보다는 신나는 엘비스의 노래가 늘 나왔는데 음악에 맞춰 길림성 아저씨는 주방에서 몸을 흔들며 요리를 했다. 아저씨의 별명은 길림성 엘비스였다. 아저씨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렬한 팬으로 길림성에서는 늘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틀었다. 아저씨는 엘비스처럼 구레나룻을 기르고 싶었지만 주방에서 일을 하기에 참았다.     


 언젠가부터 학교 근처에 대형 중국집이 생기며 사람들은 오래 기다려야 하는 길림성의 발길을 끊었다. 세계의 볶음밥은 이후 모두가 비슷하게 흘러가는 거 같았다.


 “냉동새우가 들어간 볶음밥을 이제 더 이상 먹을 수 없어.” 효상이가 말했고 상후와 기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웍이 아니라 센 불의 프라이팬에서 볶은 듯한 밥에 짜장과 스크램블로 맛을 가려 버린 볶음밥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길림성이 없어지고 난 후 우리는 길림성의 볶음밥처럼 맛있는 볶음밥을 먹어 보지 못했다. 더불어 엘비스의 음악도 우리 곁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늘 옆에만 같이 있을 것만 같았던 친구들이 서서히 길림성 볶음밥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Elvis Presley - Hound Dog https://youtu.be/-eHJ12Vhpyc

Elvis Pres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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