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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9. 2023

굿바이 투 로맨스 9

소설


    


9.


 내가 그 녀석을 처음 봤을 때 녀석은 트루먼 캐포티의 책을 읽고 있었다. 중학생주제에 잘도 그런 책을 읽는군. 하며 나는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나는 당시 엔디 워홀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트루먼 캐포티의 글은 읽지 못했지만 언데 워홀과 친한 사람이 트루먼 커포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다가갔을 때 그 녀석은 나를 보며 유약하고 환상에 젖어있는 모습이 나와 비슷해,라는 어려운 말을 했다. 그 말을 했을 때 그 소리가 지금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 톤과 비슷했다.


 나는 듣고 있던 보니 테일러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어폰 한쪽을 말없이 녀석에게 내주었다. 전혀 웃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녀석은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은 캐포티의 책을 덮고 나와 함께 노래를 들어주었고 웃어 주었다. 그날 우리는 같은 동네에, 바로 옆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녀석은 그날 나와 헤어져 집으로 가면서 노래를 종종 들려달라고 했다. 산울림의 노래를 들려준 건 나였다. 그 녀석은 이전에는 산울림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노래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고 그 녀석은 내 손을 힘 있게 꽉 잡았고 나는 인상을 쓰며 웃었던 중학교 때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 녀석은 조용히 자신이 부르는 노래음률을 태화강의 수면에 가서 닿게 했다. 그리고 낚싯대에 그 울림을 전달해 태화강의 고래에 전달하려 하는 모습을 하는 보았다. 밤하늘의 달이 선연하게 보였다. 태화강은 그 선연한 달을 수면에 고스란히 비추어 주었다. 달빛은 달무리를 자아냈고 바람이 전해주는 떨림에 따라 태화강의 수면에 반영된 달무리가 깃털처럼 나타났다.


 “호시노 미치오라는 사진가를 아나?"라고 그 녀석이 말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난 그의 사진과 에세이를 무척이나 좋아해. 난 그를 존경해. 그의 책 속에는 그의 삶이 들어있고, 그의 삶 속에는 자연에 대한 그의 사랑과 경배가 들어있지."


 “지금도 활동하고 있어?"라고 나는 물었다.


 “아니 지금은 활동하지 않아. 그 역시 영원히 아름다운 곳으로 갔어."


 그 녀석은 다시 한번 자신이 신고 있는 캔버스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캔버스 운동화는 낡을 대로 낡아서 노숙자도 쳐다보지 않을 것 같았다. 캔버스 운동화는 이제 신발이기를 포기했지만 그 녀석의 근성이 신발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번영교 난간을 환자 같은 캔버스 운동화의 앞굽으로 몇 번 두드렸다.   

  

 “오래전 대한항공의 광고에 호시노 미치노의 사진이 실렸지. 그의 사진을 보고 난 그 사람의 사진집을 찾아보기 시작했어. 그는 알래스카를 너무나 사랑했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야. 어린 나이에 알래스카의 아름다움에, 자연의 신비 속에 이미 그의 마음을 빼앗겨버린 거야. 그는 그 아름답고 숭고한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시작했어. 알래스카의 눈이 그렇게 부드럽게 보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지. 그의 사진 속에는 때 묻지 않은 엎드려있는 흰곰이나 사람을 보며 이게 뭐지? 하는 모습의 물개라든가, 그리즐리 가족의 평화로운 모습은 한 참을 쳐다보고 있어도 질리지가 않더군. 그의 에세이도 참 좋았어. 마치 내가 알래스카의 오로라를 올려다보고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지. 그는 대자연에 품은 경외심을 고스란히 에세이에 쏟아부었어. 알래스카에서 야영을 하는 현지인이나 대부분의 탐험가는 총을 지니고 야영을 하지만 그는 총을 소지하지 않고 야영을 했었지. 결국엔 거대한 그리즐리가 텐트 안으로 입을 벌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아내고 죽어버렸어. 그의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자연으로의 귀속일 거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거지."


 나는 그 녀석의 형과 죽어버린 작은 그녀와 호시노 미치오라는 사진가의 상관관계를 떠 올려 보았다.


 “난 말이야, 태화강의 고래를 낚으면 잘 타일러서 같이 알래스카로 갈 요량이야. 나 역시도 그동안 꾸준하게 알래스카 쉬즈마레프 마을의 촌장님에게 편지를 보냈었지. 답장이 온 거야. 고래를 데리고 오라고 말이지. 그것이 내가 바라는 바야."


 번영교위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오토바이는 배달 오토바이였다. 굉음을 내며 요란하고 빠르게 여기서 저 먼 곳으로 사라져 갔다.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운전사는 헬멧을 쓰지 않았다. 반대차선에서 패트롤카가 지나쳐왔지만 늘 그러려니 하는 양 지나쳐갔다.


 세계는 지나치는 것이 만연해 있었다. 따라가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경찰들이 언제나 배달을 시켜 먹는 닭 집의 배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동네 경찰이 닭 배달을 시키면 반값이거나 한 마리를 주문하면 한 마리 더 배달해 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는 모종의 협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조금 서글퍼졌다. 하지만 그런 세계가 앞으로 언제까지 펼쳐질 것이다. 대문으로 걸어 들어가서 총을 겨누고 그 집안의 돈을 긁어모아 와도, 강의 다리가 무너져 새로운 다리가 생겨나도, 13살짜리의 여자아이가 임신을 했다 치더라도,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가 페라리를 몰며 돌아다녀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태화상에 고래가 살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사람들은 금세 잊어버리고 자신의 생활에 스며들어 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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