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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2. 2023

7일을 보낸 방 2

소설


2.

  

 둘째 날.


 오른쪽 제일 구석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작은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 보인다.


 내가 방에 들어온 시간은 10시 40분이었다.


 학생은 펼쳐든 책에 시선을 박고선 공부를 했다.


 학생의 옆에는 할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이 들어 있었다.


 학생이 미약하게 밝히고 있는 불빛으로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은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을 하고 겨우 잠이 든 모습이었다.


 그 학생과 할머니의 조금 옆에는 어제 울며 일어났던 아기와 그 아기를 안고 잠들어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모녀의 주위에는 아기용품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고, 그것들은 이 방과 이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구석에는 다른 가족이 아직 잠이 들지 않고 공부하는 학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근조근 대화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귤을 까먹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니 귤을 들어서 권했다.


 나는 괜찮다며 눈인사를 하고 방 밖으로 나왔다.


 내일부터는 자정에 방에 들어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창밖에는 눈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내리고 바로 녹아야 하겠지만 기온은 아랫니와 윗니가 달그락거리며 부딪칠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다시 방에 들어왔을 때, 아기의 엄마는 쏟아지는 졸음을 겨우 회피해 가며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었다.


 아기의 엄마는 행여나 오늘도 아기가 잠에서 깰까 봐 노심초사한 표정이다.


 그럼에도 졸음은 쏟아졌다.


 내가 앉아있는 뒤편에는 또 다른 가족이 전부 한 이불을 덮고 잠이 들어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집에서 잘 때처럼 편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은 차례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잠이 들어있다.


 아마도 그들의 꿈속에서 곤장을 치는 꿈지기가 그들의 꿈속에 차례로 들어가서 엉덩이를 곤장으로 사정없이 내려치고는 또 옆 사람에게로 가고,를 반복하는 듯 보였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도 가족 중 하나의 중심축이 되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아기가 울었다.


 끙끙거리며 자는 가족들이 몸을 뒤척였다.


 침대에서만 자던 사람들이었는지 바닥에서의 잠듦은 여간 곤욕이 아닐 것이다.


 방이라고 하는 것은 무릇 자신의 날숨과 들숨이 골고루 배에 들어서 그 알 수 없는 온기와 마음이 전해져서 자신의 방에 들어오면 마치 봄날의 곰이 되어 몸의 체중을 다 빼버리고 편안하게 누워 지낼 수 있게 되는 게 자신이 살아가는 방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곳, 이 방은 그런 자신만의 마음의 편안함이 결여되어 있다.


 전혀라고 해도 무방하다. 회사원의 작업복 냄새도 났고, 아기가 우유를 되새김하는 냄새도 배어 있었고, 학생들의 그 특유의 젖비린내도 났다.


 오래된 집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방의 정감 있는 벽지도 없다.


 백야행 같은 벽이 사방을 메우고 있고 그 단조로움을 깨 듯 전기 콘센트를 꼽을 수 있는 단춧구멍이 간격마다 있을 뿐이었다.


 한쪽 벽면은 커튼이 없는 창문이 전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창문은 마치 구치소의 삼중 구조의 창을 보는 것처럼 여러 겹이었다.


 창은 그 누구도 닦지 않아 몽환의 그늘을 바라보는 거와 흡사할 만큼 뿌옇기만 했다.


 그 뿌연 창으로 차가운 겨울의 하늘이 보였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12월 초순의 눈은 반가워야 할 터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바라보는 눈은 상징성도 애물단지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잠을 이루어야 할까, 잠이 들어야 할까.


 그에 맞는 단어조차 선택할 수 없는 밤이다.


 낯선 방 안에서 이불도 없이 외투만 돌돌 몸에 감은 채 잠이 오지 않는 겨울밤, 딱히 생각나는 거리도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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