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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3.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8

소설


8.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아파트에서 투신을 하고 말았다. 나에게는 어떤 빌미도 보이지 않았다. 취준생 2년 만에 이 회사에 신입사원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그녀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있었다. 그런 압도적인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빚이 굉장했고 어머니는 그것 때문에 매일 술로 지내다가 술이 없으면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벽에 박아 버렸다. 술이 없으면 잠들지 못했고 아버지와 큰 소리로 싸우다가 아버지의 주먹에 맞아 기절을 하기도 했다. 오빠가 하나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오빠에게 성폭행을 계속 당해왔다.


 아버지는 두 달에 한 번씩 집에 들어왔는데 들어올 때마다 빚은 늘었다. 그리고 그녀가 벌어 놓은 돈을 다 들고 가버렸다. 이란이에게 가장 공포의 대상은 가족이었다. 이란이가 믿을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었는데 나는 나의 생각만 하느라 전혀 그녀를 신경 쓰지 못했다. 그녀가 왜 나의 곁에 바짝 붙어 있으려고 했는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지나간 후에 알게 된다. 이란이는 너무 겁이 났던 것이다. 가족은 인연을 끊으래야 그럴 수도 없다. 미래가, 앞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대형마트의 다른 더 좋은 자리에서 옷가게를 하면 된다는 동료들의 말에 대출을 받아서 투자한 돈을 사기를 당했다. 판단이 흐려진 가운데 그녀는 당장이라도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했다. 겨는 겨우 겨우 끈을 꽉 잡고 있었다. 손바닥에 핏물이 배기면서까지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란이는 어느 순간 끈을 잡고 있는 손을 놓고 말았다. 마음이 드디어 편해졌다. 내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편안한 곳으로 가버렸다.


 그녀는 머리부터 땅에 떨어져 그대로 박살이 났다.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와 맞바꾼 회사가 여기다. 나는 지금 올바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이 세상에 올바른 것이 있기나 할까. 사람들은 사실과 거짓으로 나누어서 잣대를 매길 뿐이었다. 나는 눈앞의 것만 보고 있다. 선풍기의 프로펠러는 모양이 있지만 돌아가는 순간 그저 원으로 보인다. 그리고 계속 보고 있으면 선풍기의 프로펠러가 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냥 믿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어쩌자고 그녀와 회사를 맞바꾼 것일까.      


 나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지만 회사에서 누구도 그런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머리가 하얀 사람처럼 대했다. 팀장이 나에게 한 소리를 하고 있지만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위서를 또 쓰라고 했다. 경위서 쓰는 것 따위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경위서를 하루에 두 번이나 쓰는 게 맞는 일일까. 팀장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약간 고개를 숙이고 팀장의 코를 보고 있는데 팀장의 뒤에서 움직이는 뭔가를 봤다. 팀장이 앉은 의자 뒤에 뭔가가 꿈틀거렸다. 일어났다가 앉았다 하는 꿈틀거리는 뭔가가 있었다. 그건 꿈에서 본 작은 인간, 리틀피플이었다.


 꿈속에서 본 또 다른 내가 먹어버린, 나의 입으로 점점 작아져 들어가 버린 리틀피플이 팀장의 의자 뒤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그만 팀장에게 쉿 라고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고 했다. 팀장은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나에게 호통을 쳤다. 나는 팀장에게 손바닥으로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하고 천천히 팀장의 의자 뒤로 살금살금 갔다. 리틀피플은 한 명이었다. 작고 조그만 발이 보였다. 리틀피플은 여러 명이 같이 다니는데 어째서라고 생각하는 순간 팀장이 나의 멱살을 잡고 푹신한 소파로 내동댕이쳤다.


 팀장은 나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화를 낸다는 건 아직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말이다. 팀장은 삶에 애착이 강한 사람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어떤 사안에 분노할 줄 아는 인간이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인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팀장에게 손가락으로 의자 뒤를 가리켰다. 팀장은 뒤를 돌아 의자 밑을 봤다. 보이죠?라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리틀피플은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도망을 갔다면 보였을 텐데. 팀장은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각오하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맞바꾼 이 회사를 나올 수 없어서 그동안 어떻게든 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료들과 수영장의 수면처럼 잔잔한 관계를 유지하며 가라앉지도 않고 떠오르지도 않는 상태로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란이가 보고 싶었다. 단지 그랬다. 볼 수 없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저 떠나버린 이란이가 미웠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버린 내가 비치도록 싫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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