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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4.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9

소설


9.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는데 걸어왔다. 두 시간을 걸어야 했다. 버스를 타면 2, 30분이면 도착하는데 걸으니 이렇게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걸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버스는 계단을 오르지 못하지만 걸으면 계단 따위 올라갈 수 있다. 세계의 끝에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이란이가 먼저 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의 이 세계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겁 낼 필요는 없다.


 집 근처 식당가에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늦은 시간인지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중에 한 가게가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간판에 ‘208209’라고 쓰여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게 안은 테이블 바가 있는 식당 겸 바였다. 홀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나는 테이블 바에 앉았다. 바로 여성 두 명이 나왔는데 쌍둥이였다. 자신들을 208, 209라고 소개하고는 식사 류는 끝이 났지만 샌드위치는 아직 된다고 했다.


 나는 샌드위치와 제임슨을 주문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동안 제임슨이 먼저 나와서 한 모금 마셨다. 목을 타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내려가서 위장을 비명 지르게 했다. 그리고 뒤에 캐러멜 향이 맴돌았다. 이게 바로 제임슨의 매력이었다. 208이 샌드위치를 내 앞에 내주었다.      


 샌드위치는 곡물식빵을 따뜻하게 데워서 사이에 아루굴라와 계란 스크램블과 햄이 있을 뿐이지만 아주 맛있었다. 208은 소스를 발라서 먹으라고 했다. 나는 순식간에 샌드위치 하나를 먹어치웠다. 소스는 유자맛이 나는 유자청이었다. 내 앞에서 208과 209가 같은 티셔츠를 입고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한 채 다른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제임슨을 한 모금 마셨다. 208이 미소를 짓고 있었고, 209가 약간은 걱정 어린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라고 내가 말하니 우리는 쌍둥이라고 했다. 그건 알겠는데 지금 이렇게 우리가 만난 건 이미 정해져 있는 일?라고 나는 말했다. 나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208, 209는 빙고!라고 했다.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는 일이라니. 유전자는 이미 모든 걸 정해놓고 우리를 그 안에서 정해진 규칙에 맞게 움직이게 한다. 그 틀을 벗어나려고 하면 유전자는 회유와 협박을 통해서 어떻게든 정해진 대로 움직이게 한다.


 나는 나머지 샌드위치를 먹었다. 쌍둥이는 나에게 한 남자와 함께 지낸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 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같이 사랑하고 있다고요. 이번에는 209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맙소사.      


 정녕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일까. 신이, 우리의 유전자가 이미 그렇게 흘러가게끔 정해 놓은 것일까. 이란이는 마지막에 마트의 코너 자리가 너무 비싸 자리를 옮기려다 사기를 당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이용을 당하다가 죽고 말았다. 사람들이 이란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졌다. 그리고 점점 미워졌다. 의지가 1도 없는 어머니와 의지만 가지고 도박에 빠져있는 아버지의 빚까지, 어린 시절 내내 성폭행을 일삼았던 친오빠.


 그녀는 살기 위해 꼼꼼하던 성격에 구멍이 하나둘씩 나기 시작했다. 코너자리에서 더 좋은 자리로 가려다가 어렵게 대출을 받아 투자한 자금을 떼 먹혔다. 그녀가 나에게 잘 있어,라는 한 마디 없이 아파트에서 투신을 한 것도 이미 정해진 일이었을까. 나는 답답한 마음에 제임슨을 한 모금 마셨다.  

    

 쌍둥이에게 물어봤다. 그럼, 애인과 잠자리를 어떻게 해요? 하루는 동생이, 하루는 언니가?라고 하자 208이 대답했다.      


 우리 쌍둥이는 좀 특별해요, 우리는 태어날 때 서로 이어져 있었대요. 그래서 우리는 고통이나 쾌감 같은 여러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더니 무엇인가가 떠올랐다는 듯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건 꽤 특별하다고 할 수 있어요. 한 번은 동생이 애인과 잠을 잘 때 저는 밖에서 장을 보고 있었는데 글쎄 거기서 흥분을 해버린 거예요. 그런 경우는 잘 없었는데 우리는 그때 강하게 서로 통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이후로 우리는 한 침대에서 같이 사랑을 나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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