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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6.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1

소설


11.


 그러나 그렇게 될 리 없기에 마음을 바꿔먹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떳떳한 모습으로 그녀 앞에 가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흥청망청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 자로 잰 듯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것들을 했다. 여자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한 눈 팔지 않고 그저 일을 하며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동료애라는 것도 느끼려고 노력을 했다. 쓸데없는 인간관계는 줄이고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뭉쳐서 업무처리를 했고 회사를 나오면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리틀피플을 이 세계에 불러낸 것이다. 내가 하루를 보내는 삶은 실은 거짓이 잔뜩 끼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리틀피플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죠? 나는 쌍둥이에게 물었다.


그건 우리도 알지 못해요. 리틀피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들은 그들이 말을 하고 싶을 때에만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언어를 표현해요.


 나에게 나타나서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내가 어떤 방아쇠가 되어 리틀피플들이 나를 잡고 빵 하고 쏘기라도 하는 것일까.


 저 오늘 회사 사무실에서도 리틀피플을 봤어요.


 쌍둥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리틀피플이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을 텐데,라고 했다. 이상한 일이라고 쌍둥이는 말했다. 벌써 자정이 가까웠다. 나는 쌍둥이에게 내일 또 와도 되겠냐고 물었고 그들은  당연하다고 했다. 계산을 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우리 동네에 이런 바가 있었다니 나는 그동안 왜 몰랐을까.     

 이란이는 어째서 사정을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걸까. 그게 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리라. 이타적인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나는 그녀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저 나의 앞날만 보고 고민과 불안을 내비쳤다. 그녀는 그런 나의 옆에서 내가 흔들리지 않게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생각에 도달하니 나는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몸이 몹시 아팠다.


 왜, 나에게 그 정도로 힘들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오늘 어땠냐고 왜 물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지나고 나니 이 등신 같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회사를 열심히 다니는 일이 그녀를 위하는 일이라고? 그런 막돼먹은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나는 쓰레기인 것이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항상 쓰레기가 있다. 인간이 있으면 반드시 쓰레기가 나온다.


 어느 겨울이었다. 날이 아주 차갑지만 바람이 없어 쨍한 날이었다. 우리는 작은 바닷가를 찾았다. 그 전날 바닷가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다를 보았다. 즐거웠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있느라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러다 뒤척이는 소리에 눈을 떠서 우리는 또 끌어안았다. 이른 오전에 우리는 바닷가로 나왔다. 외투를 걸치고 벤치에 앉았다. 햇살이 좋은 일요일이었다. 커피 한 잔을 사 오는 사이에 그녀는 김소연 시인의 시집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그대로 시가 되어 보였다.


 언젠간 이란이가 좋아하는 시 같은 하루를 선물할게.


 아니야, 지금이 그런 하루인걸. 이 정도로 나는 아주 만족해. 아주 좋아.


 이 정도면 매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작 이런 작은 선물은 매일 해줄 수 있어.


 나는 이란이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너무 맑았던 그녀였다. 그녀가 웃으면 세상이 환해졌다. 그 순간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겨울바람이었다. 그 바람에 휩쓸려 그녀가 모래처럼 사라졌다. 나는 손을 휘저으며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나는 욕을 했다.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이곳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그래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일반 도서관은 아니다. 고풍스러운 외관으로 되어 있고 민간이 운영하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 개인이 운영할 수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다시 도서관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도서관은 밝지 않았다. 천장이 높고 사람들도 없었다. 휴무인가 싶다. 도서관은 2층으로 되어 있었고 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책들은 복도에도, 계단에도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책들은 전부 고서 같았다. 일반적인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아주 중요한 것들을 기록해 놓은 역사서처럼 보였다. 한글과 한문이 섞여 있어서 잘 알 수는 없었다. 한 권을 뽑아 들고 훑어봤다.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 가득했다. 그런데 글자가 움직였다. 꾸물꾸물거리더니 내가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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