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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7.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2

소설


12.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질문을 가지고 영원한 어둠 속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겁이 났다. 무서웠다. 문장은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 나를 노려보며 나의 잘못을 적시하라고 했다. 나는 책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리틀피플이 나타나서 떨어진 책을 책장에 꽂았다.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책을 꽂았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리틀피플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지만 알아볼 수 없었다. 얼굴이 있었지만 얼굴이 없었다. 나는 리틀피플에게 물어봐야 했다.


 어째서 소설 속에 있지 않고 소설 밖으로 나왔냐고. 리틀피플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점점 리틀피플과 멀어졌다. 점점, 뒤로 뒤로 나는 밀려가고 있었다. 도서관은 숨을 쉬고 있었다. 도서관은 자신의 몸 안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 싫었다.


 리틀피플들에게 할 말이 있단 말이다!


 나는 소리쳤다. 도서관은 몸을 꿈틀거리더니 나를 도서관 밖으로 뱉어내려 했다. 나는 악착같이 기둥을 붙잡았다. 나는 알아야 했다. 리틀피플이 왜 내 앞에 나타났는지. 그때 2층에서 역광으로 실루엣을 보이며 한 여자가 방문을 열었다.      


 잠에서 깨어났다. 눈이 마치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어젯밤에는 들어와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이렇게 시체처럼 잠이 들면 꿈같은 건 꾸지 않아도 될 텐데 또 꿈속에서 고립되어 있다가 깨어났다. 나는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고 꿈에서 본 영광으로 비치는 실루엣의 여자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광 때문에 얼굴이 검게 보여서 알 수는 없었다. 어쩐지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다 자라지 않은 여자의 이미지였다.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소녀 같았다. 어제의 악몽은 다른 날의 악몽과 달랐다.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내가 알 것 같은 여자가 꿈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틀피플도.      


그 소녀는 누구일까. 단지 꿈에서 잠깐 스쳐간 여자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어제 퇴근 복장 그대로였다. 눈을 떴지만 그냥 누워있었다. 문득 천장의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천장의 벽지 무늬는 기정 할 수 없는 예술작품 같았다. 저런 무늬는 누가 만들었을까. 비 규정적인 무늬가 규칙적으로 천장을 수놓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방안의 벽지에 원래 저런 무늬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하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벽지 무늬 따위에 신경을 쓰며 생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도배를 다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 생각을 하게 된 건 벽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무슨 무늬 벽지 무늬인지는 기억이 없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도배를 하기로 생각했던 것일까. 하지만 지금 눈에 들어오는 천장의 벽지 무늬는 마음에 든다. 쳐다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대로, 그대로 잠이 들어 깨지 않는데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 작은 방에 있는 책장에서 책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 작은 방으로 갔다. 열려 있는 방문 너머로 리틀피플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리틀피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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