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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8.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3

소설

13.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댄스 댄스 댄스는 펼쳐져 떨어져 있었다. 펼쳐진 장에는 유미요시가 주인공에게 돌고래 호텔에서 양사나이를 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두 소설의 공통점은 양가죽을 둘러 쓴 사나이가 나온다는 점이다. 축축한 양가죽이 피부에 붙어서 냄새나고 고름이 끼지만 양사나이는 그렇게 공간과 공간을, 시간과 시간을 흘러 다녔다.


 그리고 어제는 내 앞에 나타나서 내가 먹던 샌드위치까지 먹어치우곤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가버렸다. 양사나이는 나의 이면을 투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고 축축하고 냄새나고 고름까지 껴 있는 양가죽을 죽지도 못한 채 등에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숙명이 나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리틀피플은 내가 잠든 동안 이 방에서 계속 책을 읽는 모양이었다. 어떻든 리틀피플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문이 하나 열렸다는 의미일까.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어쩌면 노먼 베이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는 모두에게 웃음을 보이고 친절하고 화가 나도 제대로 화를 내지 못하지만 결국 쌓인 분노가 폭발하게 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실은 잠을 잔다고 하지만 살육을 하고 다니지나 않을까. 나는 내가 무서웠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게 나에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나는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이란이는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총체적인 힘듦을 숨기고 생긋생긋 밝은 얼굴을 보이며 나에게 맞춰주려고 했을까. 인간의 능력이란 정말 이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면 이란이는 이미 그때 생을 포기해 버렸단 말인가. 무엇보다 왜, 어째서 나에게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그렇게 가버렸는지 아직까지도 미운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나에게는 왜 이란이 같은 능력이 없는 것일까. 나는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것일까.


 추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녀는 자신을 축소하고 축소해서 나를 대했다.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녀로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마도 그녀 주위의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기대고 싶지만 기댈 수 없는 나의 어깨였던 것이다. 나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지만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 나도 안다. 알지만 잘 안 되기에 더 답답하고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그녀는 이제 없다. 그녀를 보고 싶어도 그녀를 볼 수 없다. 얼마간 나는 넋이 나간 인간처럼 지냈다. 이란이 장례식장을 지켰던 것도 나였다. 그녀의 가족이 있었지만 내내 술만 마시던 어머니, 3일 동안 한 번 장례식장에 온 그녀의 아버지, 아예 나타나지 않았던 오빠. 세상의 추악한 가족이 있다면 아마도 그녀의 가족일 것이다. 그녀의 이모도 나의 옆에서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녀의 이모는 이틀 내내 울었다. 이모는 그녀의 언니, 이란이의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다. 어떻게 이란이에게 그럴 수 있냐고, 하지만 세상을 초탈한 듯한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소주만 마시던 그녀의 어머니는 술을 마시다 지쳐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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