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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9.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4

소설


14.


 회사에서 나는 리틀피플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회의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그저 참석하는 회의다. 그런 회의가 있나 싶지만 그런 회의도 있다. 나는 머릿수만 맞추면 되는 회의다. 내가 업무보고를 할 것도 아니고 팀장에게 부서 사람들이 업무계획에 관한 안건을 기록만 하면 되는 것이 오늘 내가 회의에 참석한 이유다. 오늘은 내가 보고를 해야 할 것은 없었다.


 엇 저녁에는 쌍둥이가 바에서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먹고 아침은 건너뛰고 고작 테이블 앞에 있는 커피 한 잔과 쿠키가 내가 먹은 전부다. 나는 리틀피플에 대해서, 또 이란이에 대해서 생각에 빠져 있느라 회의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리틀피플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앞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이 보였다. 석연치 않은 크기의, 석연치 않은 원근감을 지닌 리틀피플이 지정할 수 없는 얼굴을 한 채 회의실을 가로질러 갔다. 나는 그때까지 리틀피플이 나에게만 보이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대리가 리틀피플이 가로질러 갈 때 옆으로 비켜주었다. 피해 준 것이다. 분명 대리는 리틀피플을 인지했다는 말이다.


 가만, 이건 데자뷔 아닌가? 아니다. 데자뷔가 아니라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다. 그건 TV피플에서였다. TV피플들이 지나가는 길목을 사람들이 비켜주었다. 그걸 본 주인공이 TV피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주인공을 마치 없는 사람처럼 여겼다. 눈앞에 있으되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리틀피플은 TV피플이 좀 더 메타포적이고 이데아적으로 변모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리틀피플의 크기는 어린아이 같지만 어린아이의 작음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 의미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말이다. 하지만 리틀피플의 작음을 보고 있으면 돋보기를 낀 것처럼 흐려지고 모호하고 나중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이 상황은 단편소설 속에서 본 장면이다. 지금 내가 생활하고 있는 이 현실은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망상하는 그런 세계인가. 나는 이란이가 보고 싶어서 내가 만들어낸 이상한 세계에 들어와 버린 것일까. 나는 그녀를 잃고 자꾸 소설 속으로 들어가려 해서 나의 연약한 부분으로 해리가 파고 들어와서 망상의 세계를 심어 놓은 것일까. 나와 노먼 베이츠의 다른 점이 점점 좁혀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이란이가 한 번, 딱 한 번 나에게 울며 안긴 적이 있었다. 그녀는 매운 것을 못 먹는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이라면 우리는 아주 맛있거나, 덜 맛있는 음식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맛있는 것과 그냥 맛있는 것이 어떤 차이인지 잘 모른다. 맛없는 것 빼고는 대체로 다 맛있게 먹는 편이다. 맛없다고 느끼는 음식은 못 먹는 음식일 뿐이다. 못 먹는 음식은 매운 음식을 말한다. 매운 음식을 제외하고는 비린내가 나는 음식도, 짠 음식도, 단 음식도, 신 맛이 가득한 음식도 우리는 다 맛있게 먹었다. 단지 매운 걸 못 먹었다. 그녀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목이 벌겋게 되면서 얼굴에 반점이 생겨나고 캅사이신이 많은 음식이라면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는 마트에서 옷 장사를 할 때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을 때에도 모두가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그 음식을 주문해도 이란이는 맵지 않은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 싫었던지 같은 층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여 데리고 간 음식점에서 매운 낙지구이를 주문해서 먹이고 말았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에게 매운 음식을 먹게 하고픈 것이 사람들의 심리일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결국 매운 낙지구이를 먹이고 만 것이다. 그녀의 얼굴 피부가 되짚어졌고 숨을 쉬지 못해 그 자리에서 헐떡거렸다.


 그녀는 사람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 동료들은 119를 빨리 부를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물만 마시게 하다가 그녀가 결국 정신을 잃었다. 119를 부른 건 식당의 주인이었다. 그날 저녁에 그녀는 나에게 안겨 울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마트에서 옷 장사를 하는 걸 때려치워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동료들을 찾아가서 욕을 실컷 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작 그녀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취해야 할 태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올바른 태도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런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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