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Sep 20.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5

소설


15.


 팀장이 나를 불렀다. 회의 기록에 관한 것들을 물었다. 도대체 기록에 관한 것에 대한 답이 뭐가 있을까. 기록은 잘 되었다고 했다. 팀장은 나에게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아이디어를 생각해 놓은 게 없다고 했다.


 아니, 도대체 왜 오늘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나는 고작 이런 회사에 들어오려고 이란이에게 제대로 태도를 취하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공부를 했던 것일까. 그녀를 잃고 그녀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이런 회사에 몸 바치는 거였단 말인가. 인생이라는 것이 허망하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잃을까 봐 또 불안하다. 불안하지 않으면 왜 불안하지 않을까 싶어서 더 불안하다. 인생이란 불안의 연속이다. 허망한 것이다.


 팀장과 동료들이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리틀피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그들의 통로를 만들어주자고 했다. 일순 고요해졌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하던 동료들은 모두가 고개를 돌려 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눈에서 텅 빈 공동을 보았다. 그리고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언어가 소거된 것 같았다. 마치 말을 하는 법을 갑자기 잃어버렸거나 언어의 능력을 마법으로 빼앗겨버린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가 일어나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들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들을 것처럼 나를 석연치 않은 존재로 여겼다. 그렇게 느껴졌다.


 하루가 지나칠 정도로 평범하게 흘렀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를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것 같았다.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관계에서도 나를 소외시켰다. 상관없었다. 나는 인간관계에 공을 들리는 그런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다. 모두가 바쁘게 일을 했다. 생각은 몸을 굳게 만들고 정신의 영역, 영혼은 빠르게 달리게 만들었다.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생각이 밀려왔다. 이게 나의 생각인가 할 정도로 생각의 범위가 넓고 깊고 높았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아이들과 놀 때에는 아이의 가면을, 친구들을 만날 때, 레저모임에서 전부 제각각 다른 가면을 쓴다. 자신의 본모습은 오로지 잠들기 직전 그 잠깐의 시간 동안만일지도 모른다. 그 외에는 모두 가짜의 모습을 지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혹은 가면을 쓴 제각각의 모습도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면을 쓰지 않는 모습을 지닌 사람을 이상하게 본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서 내쫓아버리고 만다. 정직하게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비난받는 분위기가 된다.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다. 점점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이다.


 잠이 왔다. 그동안 잠을 설친 대가를 받으려는 듯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잠이 쏟아졌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에도 도덕이니 양심 같은 것들을 빼버린 권력을 말했다. 어째서 못 사는 사람들은 밤낮없이 뼈 빠지게 일을 해도 돈을 벌지 못할까. 부자들은 왜 하는 일도 없으면서 부를 끌어 모으고 자꾸 축척하는 것에 대해서 깊은 고민과 연구를 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몇 년을 틀어박혀 군주론이라는 것을 쓰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를 생각하다 엄청 졸음이 쏟아졌다. 어떤 불순물도 껴있지 않은 오죽 순수한 졸음이라 힘이 막강했다. 회사에서 이렇게 잠이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눈이 저절로 막 감겼다. 힘을 주고 눈을 뜨려고 해도 대단한 중력으로 눈꺼풀이 감겼다. 나는 잠들지 않으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키 오마주 소설 1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