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Sep 21.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6

소설

16.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내친김에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20개씩 5세트를 했다. 한 번 쉴 때마다 10초의 간극을 두었다. 스쾃을 50개를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했다. 등에서 땀이 한 줄기 흐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세 번을 반복했다. 확실히 등이 촉촉해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카세트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렀다. 라디오 헤드의 키드 에이가 나왔다. 음악을 듣다가 고개를 들었다.


 빽빽한 나무들이 하늘을 거의 덮었다. 나무는 끝 간 데 없이 뻗어 있었고 주위는 온통 숲이었다. 바람이 한 차례 부니 풀들은 스산한 소리를 냈다. 난생처음 보는 풀숲이었다. 여기는 아주 깊은 산 속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작은 통나무 집(이라고 겨우 부를 수 있을 정도)이 있고 나는 그 앞에 동그랗게 자리를 마련해서 덱체어에 앉아서 중간에 땔감으로 불을 지폈다. 이런 깊은 산속에는 누구도 오지 않는다.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안전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없어서 극도의 불안감이 드는 곳이다. 아직 밤이 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숲은 어두웠다.


 나는 일어나서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사방으로 수납공간이 있었다. 통조림과 물이 선반에 가득 들어 있었다. 며칠은 지낼 수 있을 만한 식량이었다. 나는 어쩐 일인지 이곳에서 며칠을 있어야 했다. 잘 모르지만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문 옆에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의 제목은 ‘기사단장 죽이기’였다. 2차 대전과 난징학살에 관련된 저명한 미술가가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 옆에 그림을 설명하는 문구가 가득 있었다.


 그 그림의 우측 하단에 아주 작은 모습의 현현하는 이데아의 모습을 한 리틀피플이 있었다. 나는 무엇을 피해 이 고립된 곳까지 와 있는 것이다. 무엇을 피해 이곳으로 온 것일까. 키드 에이는 모닝 벨로 이어지고 있었다. 고요한 곳에서 라디오 헤드의 키드 에이 앨범을 듣고 있다는 건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분명 현실에서 무엇을 피해 이곳에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통나무집을 나갔다. 들리는 소리는 현재의 말투가 아니었다. 50년대? 60년대 영화에서 들을법한 말투였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나는 귀를 기울였다. 서쪽에서 그들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그들은 두 명으로 군인이었다. 민무늬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칼빈 소총을 들고 있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덩치가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아직 학생처럼 보이는 왜소한 몸의 군인이었다.


 그들은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그곳으로 가는 길이 이쪽이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들은 혹시 물이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다. 나는 기꺼이 통나무집으로 안내했다. 앞에 마련한 작은 광장에 두 사람을 앉게 했다. 생수병 두 병을 들고 왔다. 두 사람은 받은 생수병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생수병을 따 주었다. 그들은 물을 아주 맛있게 마셨다.


 염치없지만 혹시 먹을 것도 좀 있을까? 덩치가 큰 군인이 덩치에 맞지 않는 말투로 멋 적게 물었다. 나는 통조림을 들고 와서 따 주었다. 두 사람은 땀을 닦으며 통조림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여분의 물과 통조림을 그들의 가방에 넣어 주었다. 두 군인은 나에게 미안해하며 자신들은 전쟁에 끌려간 경위를 말해주었다. 18시까지 그곳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작전을 끝내고 그곳에서 부대와 접선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군인들에게 리틀피플을 봤냐고 물었다. 그들은 당연히 봤다고 했다. 리틀피플이 우리를 도와줬는 걸. 왜소한, 학생 같은 군인이 덩치가 큰 군인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덩치가 큰 군인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은 언제쯤 끝날 것 같으냐고 나는 물었다. 두 사람은 그 부분에 있어서 고민을 했다. 아직 닿을 수 없는 미래의 일을 군인들은 생각해보지 않은 듯했다.


 전쟁은 겪어보니 잔인한 거야. 이렇게 잔인한 상황이 있을까 싶어. 전쟁을 하는 이유가 전쟁을 끊어내기 위해서래. 전쟁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더 잔인해질 수 있는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는 거야.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지도 몰라. 이제 일어나야겠어. 라며 군인들은 일어났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키 오마주 소설 1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