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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2.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7

소설


17.


 나는 어쩐지 군인들을 보내기 싫었다. 군인들은 학생과 농사를 짓다가 군인으로 끌려간 것 같았다.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전쟁은 그런 사람들마저 살인기계로 만들었다.


 리틀피플을 만나면 네가 찾는다고 전해줄게. 리틀피플은 석연치 않은 모습이지만 그리 나쁜 의도는 없을 거야. 적어도 우리에겐 그랬거든.


 두 명의 군인들은 나와 인사를 하고 철모를 덮어쓰고 등을 구부리고 군화를 옮겨 저 먼 곳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막막한 곳으로 가면서도 대화를 계속했다. 마치 마지막 대화인 것처럼. 그렇지 않고서는 아마 이 끝도 없는 컴컴함 숲 속에서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가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두 사람의 군인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숲은 더욱 확고하게 나를 고립시켰다.


 17시가 지났다. 군인들은 도착지점에 다다랐을까. 두 사람의 군인은 사실 이 깊은 산속을 내내 다닐 것이다. 끝없이 이어진 무한 굴레의 산속을 지쳐도 멈추지 못하고 계속 걸으며 그곳으로 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원하지 않은 징병제로 입대를 하게 되어 어린 나이에 전쟁이 투입이 되었다. 같은 민족이지만 적진으로 가서 마을 사람들까지 명령에 의해서 발포를 해야 했다. 명령을 어기면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도 적군의 총기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념 때문에 잘못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총알로 머리에 구멍을 내야 했다. 만약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환영받지 못하며 제대로 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머리에 총으로 구멍을 낸 트라우마는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이다.


 바람이 또 불었다. 휘이이익하는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들이 움직였다. 나뭇가지가 움직이면서 기묘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땅 밑, 더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깨어나는 소름 돋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신을 차리니 숲은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나는 불을 더 때웠다. 장작은 활활 타오르는가 싶더니 점점 불이 거세져 어느새 헛간도 태우고 있었다. 버려진 헛간은 반드시 태워져야 한다. 그것은 단지 태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두 달에 한 번쯤 들판에 버려진 쓸모없는 것들을 태우는 것이다. 말하자면 범죄행위지. 석유를 뿌리고 성냥불을 그으면 끝이다. 세상에는 쓸모없이 타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들이 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진짜 많다. 그런 것들을 없애는 일은 태워 없앤다 해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이다. 늘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없어지기를 바란다는 것도.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렇게 정해져 있는 일이다.      


 거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뿐이에요.    

 

 목소리가 낯이 익다. 목소리를 따라가니 계단 위의 그 소녀다. 소녀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다. 이미 정해진 일이라고, 그것은 사실 그곳에서도 존재하고 이곳에도 존재한다. 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다. 헛간은 보란 듯이 활활 타오르는가 싶더니 금방 다 타버렸다. 재만 남았다. 그을음이 불이 났다는 것을 확인해 줄 뿐이었다. 한기가 들고 벌레들의 소리가 기계소리만큼 무섭게 들렸다. 숲은 숨을 쉬었다. 숲은 혼자서 지내고 싶어 인간이 들어오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숲은 바람을 만들고 이름 모를 풀들을 움직이게 해서 숲으로 들어온 이방인에게 상처를 입혔다.


 나는 무서웠다. 관념적인 무서움이 아니었다. 근원적인 공포였다. 바람이 주는 공포, 숲이라는 공포, 어둠이라는 공포, 추위라는 공포, 이름 모를 벌레들의 공포, 근본적인 공포가 나를 여기저기 찔렀다. 나는 가슴이 뛰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공포는 거대한 불안으로 변해서 나를 짓눌렀다. 나는 고개를 돌릴 수도 없고 입으로 말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다시 도서관 2층의 한 방의 문이 열리고 달빛을 뒤로하고 역광의 소녀가 나를 내려다봤다. 실루엣으로 그녀는, 그녀는 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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