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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4.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9

소설


19.


 걸어서 하수구 쪽으로 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다. 고작 한 블록 차이인데 압도적으로 저쪽에는 유동인구가 많아다. 유동인구? 이런 말은 도시개발에나 쓰일법한 말이다. 유동인구 같은 말을 내가 쓰다니. 모든 것이 전부 이미 정해진 일처럼 느껴졌다. 하수구 쪽으로 다가가니 나를 부르는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하지만 소리는 낮았다. 크게 들렸지만 낮게 들렸다. 그렇게 밖에 설명이 불가능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하수구의 구멍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이데아가 있었다. 이데아는 통나무집 문 옆에 걸려 있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에 있던 이데아였다. 이데아는 리틀피플보다 좀 더 작았다. 이데아 역시 몸집을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이고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봐, 형씨. 이제 가야 할 시간인 거 같은데. 시간이 다 된 것 같아. 시간이 다 된 거야. 여기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 형씨, 여기에 머물수록 세계의 시간에 오류가 난단 말이야.


 무슨 오류? 무슨 오류가 난다는 거지?


 이미 형씨는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어. 그러다가 곧 그들은 형씨를 없는 사람취급 할 거야. 그리고 조금씩 형씨는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거지. 곧 그가 형씨를 잡으러 올 거라고. 그 사람에게 잡히게 되면 형씨는 있으되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게 돼. 그러면 우리도 힘들어져. 우리 모두는 시스템에 불과하거든.


 그? 그 사람? 그게 누구지? 누가 나를 잡으로 온단 말이야?


 이데아는 잠시 틈을 두었다.


 형씨가 알 거야, 누군지는.


 이데아는 작은 발로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그 모습이 마치, 까지 생각했을 때, 크리스마스의 장식품 같다고 말하지는 말게,라고 이데아가 말했다. 이데아는 다시 틈을 두었다. 나는 이데아에게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얼굴 없는 사나이가 형씨를 잡으러 올 거야. 붙잡히게 된다면 얼굴 없는 사나이는 형씨의 얼굴을 가져갈 걸세. 그리고 형씨는 영영 무의 상태로 이곳에서 먼지처럼 떠돌게 된다구. 그렇게 되면 우리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져.      


 나는 얼굴 없는 사나이를 본 것 같았다. 어딘가 휴게소에 딸린 레스토랑 같은 곳이었다. 얼굴은 있었지만 기억하려고 하면 얼굴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점점 얼굴이라는 형태 자체가 지우개로 문질러 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얼굴 없는 사나이는 나를 따라서 거기 고속도로 휴게소에 딸린 레스토랑까지 온 것이다. 그때 나는 이란이의 죽음으로 인해 요양소에 가려고 했다. 그 요양소는 키즈키의 죽음으로 마음의 병이 깊어진 나오코가 들어간 요양소였다. 닿을 수 없는 붉은 우울을 가득 안고 나는 그 요양소에 가는 와중에 얼굴 없는 사나이를 봤다. 그 사내는 이미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을 소거 한 채 나를 따라다니며 나의 얼굴을 가지고 가려는 계획을 이미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야? 라며 돌아보니 이데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야 할 시간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목적지를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얼굴 없는 사나이는 나와 거리를 점점 좁혀 오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그건 핑계일지도 모른다. 나의 불안을 얼굴 없는 사나이에게 다 돌려 버릴 수 있다고 잠깐 생각이 들었다. 불안은 어른이 되고 나서, 어른으로 등장하는 순간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불안이 크게 느껴지지 시작했다. 불안은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내가 참지 못할 정도로 힘든 건 불안이라는 것이 점점 증식한다는 사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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