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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5.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20

소설


20.


 이데아, 리틀피플, 양사나이, 얼굴 없는 사나이가 꿈속에서 벗어나서 현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서관의 실루엣 소녀, 그녀는 성인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달빛이 역광으로 비치던 그 소녀는 누구일까. 어째서 그 소녀에 대해서 이렇게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일까. 이미 정해진 것이 나로 하여금 그 소녀를 계속 생각나게 하는 것일까.


 그래, 맞아. 208, 209, 사랑스러운 쌍둥이도 있었지. 나는 쌍둥이가 하는 술집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길거리 어디에선가 베토벤의 대공트리오가 계속 나왔다. 대공에게 바치는 음악이 이렇게도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은 귀족의 녹을 먹으며 귀족을 위해 음악을 만들기도 했지만 귀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벽에 책을 던지거나 불 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잘 모르지만 베토벤 같은 세기의 음악가도 하찮은 것에 신경질을 냈고, 정신이 점점 망가져갔고 귀까지 멀었다. 그렇게 몸이 망가져 가는 와중에서도 세기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어떤 힘이 도사리고 있기에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일까.


 안톤 체호프 역시 의사라서 자신의 몸이 점점 죽음으로 간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시베리아의 극한의 추위 속으로 들어가 글을 쓰며 한낱 인기 있는 작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무엇이, 어째서 평온하고 괜찮은 삶을 버리고 비극을 알면서도 그런 세계로 뛰어들게 하는 것일까.


 베토벤의 음악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길거리에 어디에서도 베토벤 음악 같은 것을 틀 만한 점포나 가게,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공트리오가 기가 막히게 흘러나왔다. 지금 세상에는 레코드 가게도 전부 사라졌고 길거리에 베토벤 음악이 나올만한 어떤 매개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에게 음악을 전달하겠다.라는 의지가 가득하게도 베토벤의 대공트리오가 흘러나왔다. 어찌 되었던 대공트리오는 참 좋다.


 나는 베토벤의 대공트리오를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나라고 하는 인간은 클래식에 대해서는 무지한 인간이다. 나도 나를 잘 안다. 클래식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었던 말인가. 들을만한 시간도 없었다. 특히 취업을 준비하면서는 더 그랬다. 그러고 보니 이란이와 잠시라도 같이 있을 때면 둘이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들었다. 이란이가 베토벤을 들려줬던 기억이 났다. 이런 기억을 나는 그동안 어떻게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이런 기억은 잊어버릴 리 없고, 잊어버려서도 안 된다. 누군가 나의 기억을 훔쳐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때.


 사람들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마구 뛰었다. 소리를 쳤다. 전쟁이가 쏟아진다!라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살아있는 전갱이 수만 마리가 하늘의 저 끝에서 땅으로 쏟아졌다. 우다다닥하는 무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터지는 놈도 있고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는 놈도 있었다.


 대부분은 땅바닥에서 팔닥팔닥 거렸다. 아직 집으로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전갱이를 잡기도 했다. 길바닥은 순식간에 비린내로 가득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비린내가 도로에 가득 퍼졌다. 차들은 비상등을 켠 채 그대로 멈췄고 전갱이를 맞은 사람들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건 어쩌면 자연적인 현상보다 얼굴 없는 사나이가 개입이 되어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늘에서 전갱이를 수 천 수만 마리 떨어지게 하는 건 얼굴 없는 사나이 밖에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는 나를 잡으러 오고 있다. 나의 얼굴을 뺏으러 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금씩 나의 기억을 훔쳐 가고 있다. 나는 기억해내지 못하는 일들이 늘어갈 것이다. 나처럼 하찮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의 얼굴을 가지려 이 엄청난 일을 벌이며 오고 있다. 전갱이는 전혀 오염되지 않았으며 그대로 구워 먹어도 될 만큼 신선했다. 사람들이 오히려 오염될 대로 오염이 되었고 신선한 것들은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치솟았다. 전갱이는 가장 순수한 인간의 자아 속 파편일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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