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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6.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21

소설


21.

 

 얼굴 없는 사나이는 인간의 순수한 자아의 파편을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게 해서 쓸모없게 만들고 있다. 인간이란 지구상에서 어쩌면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존재 1순위이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작업을 얼굴 없는 사나이가 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타락을 위하여 얼굴 없는 사나이는 인간 앞에 나타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난리법석 속에서 나의 존재는 점점 잊혀갔다. 사람들은 눈앞에 떨어진 전갱이에만 신경이 쏠려 있었다. 나의 의식의 조각들이 전갱이들이 되어 길바닥에 흩뿌려지는 것만 같았다.


 저 앞에서는 땅에 떨어진 전갱이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 전갱이를 먼저 주인 사람에게서 만취한 사람이 뺏으려다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주먹다짐에 얼굴에 피까지 났다. 뒤늦게 경찰이 왔고 먼저 전갱이를 주운 사람은 억울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럼 어떡합니까. 다짜고짜 자기 전갱이라며 주먹을 휘두르는데 가만히 맞고만 있습니까. 맞고 있다가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합니까.


 경찰은 사건이 터진 다음에 누군가 피를 흘리면 나타난다. 범죄자들은 법을 준수해 가며 죄를 짓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자는 범죄자가 휘두르는 칼에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 같이 덤비거나 때리게 되면 법을 어기는 것이다. 이미 법을 어겨가며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는 그런 법 따위 두렵지 않다. 피해자는 범법도 두렵고 가해자도 무섭고 겁이 난다. 그래서 법과 경찰은 누구의 편인지 모를 때가 드러 있다. 경찰은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어른이 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일이 많다는 말이다. 경찰은 자신들도 도로에 떨어진 전갱이들 때문에 출동이 늦어진 점 양해 바란다고 했다.


 도로에 가득 퍼진 비린내 때문에 코를 한 손으로 막고 208, 209가 하는 바로 갔다. 바에도 비린내가 났다. 밖에서 느닷없이 전갱이 비를 맞은 사람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테이블 바에 걸터앉았다. 208과 209는 분주했다. 그녀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어쩐지 그림 같았다. 그림 여러 개를 이어 붙여 놓은 것 같은 몸놀림이었다. 무거운 맥주잔도 바삐 움직이는 몸에도 무게감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쌍둥이의 모습을 보는 것에 빠져들었다. 그녀들의 동작에는 일종의 리듬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비린내가 사라졌다. 더 이상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쌍둥이는 나에게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제임슨과 어제 먹었던 햄 샌드위치를 달라고 했다. 208이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쌍둥이가 전부 홀에 있어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바에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가 흐르고 있었다. 바에 전갱이 비를 피해 들어왔던 사람들도 한 시간 정도 지나니 거의 빠져나갔다. 제임슨이 먼저 나와서 한 모금 마셨다. 분명 오늘 밤에도 악몽을 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현실이 악몽인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주방의 문이 열리고 양가죽을 덮어쓴 양사나이가 샌드위치를 들고 나왔다.


 지난번에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대접하겠소. 양사나이가 말했다. 나는 양사나이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서브웨이 샌드위치와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맛있는 샌드위치였다.


 리틀피플이 많아졌소. 라며 양사나이는 뭔가 할 말을 남긴 채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뜬금없는 말에, 뜬금없는 행동을 한 후 사라지니 그 자리에는 마치 양사나이의 그림자만 쳬셔의 웃음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양사나이가 한 말을 생각하기 이전에는 나는 샌드위치를 먹느라 생각하기를 잠깐 멈추었다. 그저 샌드위치를 먹는 것에 열중했다.


 이란이와 같이 그녀가 싸 온 도시락을 먹지 않을 때에는 샌드위치를 주로 먹었다. 그녀는 나와 샌드위치를 먹는 걸 좋아했다. 제임슨은 점점 캐러멜 맛이 강해졌다. 더불어 정신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성처럼 조금씩 흐트러졌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208, 209는 한 시간을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쌍둥이의 움직임은 점점 현실감이 떨어졌다. 그녀들의 움직임에서 전혀 무게감이라는 걸 느낄 수가 없었다. 손님들이 대부분 빠졌다. 208, 209가 빠진 손님의 자리 정리가 끝나고 내가 앉은자리로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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