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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8.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23

소설


23.


 역시 맛있군요. 저는 맥주도 아주 맛있다고 느끼는 인간입니다. 사실 맥주는 참 맛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즐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맥주보다는 이게 훨씬 맛있군요. 저에게 이런 고급 코냑도 사주시고, 그런 의미에서 빨리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제가 좀 흥분을 했습니다. 코냑 한 잔에 이렇게 흥분을 하다니요.


 그러더니 들고 다니는 낡은 소가죽으로 보이는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하나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저희 쪽에서의 제안은 이런 것입니다.


 잠깐만요, 저희 쪽이라는 건?


 네, 당신은 한 마디를 놓치지 않는군요. 그런 자세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쪽이라는 건 이 제안을 의뢰한 단체입니다. 저는 그 단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슨 단체인지는 모릅니다. 저는 그저 심부름을 하는 심부름꾼일 뿐이니까요. 저는 선불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에는 마음 놓고 맥주를 평소보다 실컷 마셨습니다. 그래봐야 두세 병정도 더 마신 것뿐이지만요. 저 이렇게 배가 나왔어요 조절을 하기에 이 정도입니다. 만약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마셨다면 아마 잘 걷지도 못했을 겁니다. 두세 병정도 더 마셨지만 저에게는 대단히 축복적인 날이었습니다. 축복적인,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기뻤다는 말입니다. 저 같은 인간은 고작 이런 일에 기뻐하고 하찮은 것에 조마조마해하는 그런 인간이니까요. 그러니까 저희 쪽에서는 제안드리는 건 이쪽에서 마련한 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저희 쪽에서 학자금대출받은 것도 일시불로 갚아줄 것이며 당신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지요? 결혼을 한, 그런 것쯤 조사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조사라고 할 것 까지도 없어요. 불법으로 한 건 아닙니다. 당신 동생의 딸, 그러니까 당신의 조카의 평생 학비를 책임질 겁니다. 물론 선불로 5천만 원을 입금을 할 겁니다. 물론 제가 아니라 의뢰를 한 단체에서 말입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오케이를 하신다면 당신의 통장으로 바로 입금이 될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 돈을 당신의 조카나 여동생에게 보내주면 됩니다. 그게 마뜩잖으시다면 저희가 재단의 이름으로 당신의 동생 통장에 바로 이체를 시키겠습니다. 전혀 이상한 돈은 아닙니다. 검은돈이 아니라는 말이죠. 어떻습니까? 구미가 당기는 제안 아닙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걸 저희 쪽에서는 가능합니다. 당신이 저쪽 세계로 가면 – 한 번 가보셨다고 하던데, 그 문지기가 있는 마을에 가면 더 이상 돈이라는 건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죠.


 정적이 흘렀다. 나는 제임슨을 홀짝홀짝 계속 마셨다. 리틀피플을 만나야 한다. 리틀피플을 만나고 나면 실마리가 풀릴 것 같았다. 우시카와라는 사람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노란끼가 가득했다. 눈동자에는 갈망이라는 빛이 잠시 보였지만 이내 그의 눈은 비 온 뒤 혼탁해진 개울물 같았다.


 우시카와 씨?


 오우 저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영광입니다. 저는 이름으로 잘 부르는 일이 드뭅니다. 길거리를 길거리를 걸어가면 아저씨, 또는 여봐요,라고 불립니다. 일을 맡아서 해주는 곳에서는 호칭을 부르지 않고 바로 본론을 말해버립니다. 저의 인간관계가 너무나 협소하여 만나는 이들이 현재는 일을 받아서 하는 곳이기 때문에 현재의 저의 이름조차 까먹을 지경입니다. 나의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하고 한참을 생각해야 할 지경이라고요. 은행이라도 가게 되면 이제는 번호표로 불리는 자동 시스템이라 예전처럼 이름이 불리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 하하, 죄송합니다. 저의 이름을 누군가가 이렇게 불러준 건 실로 오랜만이라 그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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