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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9.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24

소설


24.


 몸담고 계신 곳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일을 하시는 게 맞는 건가요?


 나의 질문에 우시카와는 뭘 그런 걸 고민합니까?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사실 회사를 다니는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자신의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알까요? 하하 물론 회사가 무슨 회사인지는 압니다. 다 알죠.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를 만들고,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는 휴대전화를 만들지요. 그러나 그 속에서 부서에 속해서 일을 하는 회사원들이 직접적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 할지도 모릅니다. 그저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런 하루가 모여 한 달이, 그리고 일 년이 지나갑니다. 어느 날 아, 나는 자동차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 그런데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거지? 같은 권태가 오기도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그 회사는 당최 무슨 일을 하는 걸까요?


 우시카와의 말을 듣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정말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생각을 했지만 도무지 무슨 회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건 아마도 얼굴 없는 사나이가 나의 기억을 훔쳐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떻습니까? 굳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조직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세세하게 알면 알수록 나의 위험 수위도 높아집니다. 그건 어디에나 마찬가지입니다. 군대가 무슨 일을 합니까? 군대가 하는 일이 있겠지요. 그러나 입대를 하면 군대가 하는 일과 무관하게 매일 군화를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군복을 빨고 다리고, 총기정리를 합니다. 그러다가 주특기로 피엑스로 가게 되면 제대하는 그날까지 과자만 세다가 나옵니다. 그런 거지요. 꼭 내가 속한 조직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시키는 일을 하면 됩니다. 어려운 것이 아니면 더 좋겠지요. 그리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습니다. 그거면 된 것 아닙니까.


 우시카와라는 사람의 말투에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멸시와 경멸이 담겨 있었다. 헤헤 실실 거리며 상대방의 태도를 관찰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적정한 선에서 벗어나거나 내려갔다고 생각되면 경명을 섞어서 언변을 늘어놓았다.


 거절한다면요?라고 나는 말했다. 순간 우시카와의 얼굴에서 그나마 미미하게 있던 생기라는 것이 빠져나갔다. 낭패라는 듯, 전혀 예상을 못해다는 듯, 도대체 왜 그 많은 돈을 포기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것 보십시오. 아, 만약 제안을 거절하신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신이 거절하겠다는데 억지로 제안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당신이 제안을 거절해도 저에게 돌아가는 보수는 같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조직은 제게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제안을 거절하게 된 다면 당신뿐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환란 속에 갇히게 된다고 말이죠. 그렇게 하면 입구의 돌이 열려 버린다고 말이죠. 입구의 돌이라는 게 열리기 시작하면 알 수 없는 비극이 당신에게 떨어질 거라고 말이죠. 물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파도처럼 퍼져나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마을에 가게 되면 이제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 마을에서 그림자를 떼어 내고 살아야 한다. 그림자가 없이는 살아있되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을에서 제공된 기묘한 칼로 나의 눈을 찌른 다음 며칠 동안 나는 해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지내다가 붕대를 풀었을 때에는 이미 마음이 죽어가는 것이다.


 존 버거가 그랬다. 기대와 희망의 차이는 '기대'는 몸이 하는 것이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것이라고. 나는 일말의 어떤 희망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아침을 먹고 같은 시간 동안 일각수 뼈의 꿈을 읽는 일만 하는 것이다. 불사로, 죽지도 못하고 마음도 잃어버린 채 그렇게 마을에서 지내는 것이다. 음악도 없고 노래도 모르고 시와 운율이라는 것도 없는 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건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는 삶, 바로 좀비의 삶과 같은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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