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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2.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27

소설


27.


 이제 그곳에 잠시 다녀와야 했다. 나는 208, 209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209가 잠시 있어 달라고 했다. 주방으로 들어가서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의 상자였다.


 이건 뭡니까?라고 물으니 선물이라고 하며 집에서 풀어보면 알게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208이 그 상자 속에 있는 것이 리틀피플이 들고 온 것이라고 했다. 리틀피플은 숲에서는 힘이 강해져서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리틀피플은 힘이 약했을 때는 한없이 친근한 아이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힘이 강해지면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리틀피플의 힘이 강력해지기 전에 그녀가 있는 곳에 다녀와야 했다.


 그렇게 쌍둥이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몸은 천근만큼이지만 정신은 생명을 갓 부여받은 스포츠카처럼 생생했다. 상자를 먼저 풀어볼까 하다가 일단 샤워를 하기로 했다. 얼굴 없는 사나이가 나에게 오고 있다. 그것이 세상이 비관적으로 바뀌는 것과 연관이 있단 말인가. 따뜻한 물이 샤워기를 통해 나의 몸으로 흘렀다. 몸을 깨끗하게 한다는 건 따지고 보면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말이다. 매일 저녁에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건 매일을 무사히 보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무사히 하루를 보낸다는 건 사람이 살아가는 큰 의미일지도 모른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의미를 따지는 걸 좋아한다. 나 역시 한국 사람인 것이다.



 버스를 타고 할까, 차를 렌트해서 갈까 고민을 했다.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간다. 옆으로 난 경치를 보며 가기에는 버스를 타는 게 좋다. 그러나 요즘은 국도가 새롭게 포장을 하고 바다를 따라 난 도로가 포항까지는 새로운 국도 또는 고속도로로로 가게 되어서 경치를 보는 재미가 떨어진다. 나는 소형차 아반떼를 렌트했다. 소형차라고 하지만 온갖 전자장치에 부르릉 반응이 좋다. 모든 것이 자동식이다. 나는 수동기어는 없냐고 물었다가 렌터카 직원에게 묘한 눈빛을 보았다. 일단 3일 동안 렌트비용을 지불했는데 초과하면 비용을 더 지불하면 된다.


 휴대폰에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음악을 틀었다. 25분짜리 신포니에타다. 날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화창했다. 하늘은 질릴 대로 파랗게 질려 있었고 가끔 구름이 질투를 하듯 군데군데 떠 있었다. 바야흐로 시월인 것이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시월의 바람이 들어왔다. 그때 두둥 두둥 하는 일각수의 머리뼈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귀의 경로를 무시하고 바로 머리로 두둥 두둥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가 들린다는 느낌보다 만져진다는 기분이었다.


 아주 이질적인 소리, 마치 15미터 물속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처럼 느껴졌다. 아직 경주도 오지 못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왔기에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했다. 경주에 진입하기 직전 불국사 도입 부분에 만두도 팔고, 카페도 있고 식당도 있는 곳이 있다. 차를 갓길에 주차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는 오전이지만 이미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커피와 소금빵과 치즈를 주문해서 먹었다. 썩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꽤 맛있었다.


 특히 소금빵은 짭조름한데 그 짭조름함이 기분이 나쁜 짠맛이 아니었다. 강하게 혀로 느껴지는 짠맛이 아니라 부드럽고 미미하게 혀를 타고 느껴지는 짭조름한 맛이었다. 치즈를 곁들여 먹으니 훨씬 맛있었다. 커피 역시 신선했다. 한 번에 반 정도를 마셔버리니 주인장이 리플 해드리니 다 마시고 더 달라고 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주인장의 인상이 좋았다. 지금의 날씨와 맞먹을 정도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이상하지만 카페에서 직원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으면 안정이 된다. 기묘한 일이다.


 비극적인 일이 세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듯 날씨는 좋고 하늘을 파랗고 커피는 맛있고 카페 주인의 인상은 좋았다. 인생의 완벽함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빵을 먹으며 휴대전화를 열었다. 사진첩을 보았다. 사진첩을 오랜만에 봤다. 스크롤바를 내려 저 위의 사진을 보았다. 이란이와 함께 찍은 사진과 이란이 사진이 있었다. 이란이는 죽고 없어졌는데 사진 속 이란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저 웃음을 한 번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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