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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3.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28

소설


28.


 이란이와 함께 찍은 사진은 주로 같이 밥을 먹다가 찍은 사진이 많았다. 스크롤을 올려서 사진들을 내리면서 천천히 보았다. 추억이 밀려왔다. 이란이와의 추억은 마음 저 안쪽을 따뜻하게 했다. 동시에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도 주었다. 정말 가슴이 아픈 것 같았다.


 사진을 보다 보니 이란이와 내가 나란히 앉아서 바다를 보는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우리의 등을 볼 수 있는 사진이었다. 이란이가 나의 어깨에 기대 있고 나는 양팔을 뒤로 쭉 뻗어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녀와 나의 사진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사진의 기억이 없다. 무엇보다 이 사진을 누가 찍어줬을까. 나의 폰에 있는 사진이기에 나의 폰으로 누군가가 찍어줬다는 말이다. 도대체 누가?


 게다가 나는 이란이와 바다에 간 기억이 없다. 어떤 사람에게 폰을 줘서 찍어 달라고 한 기억 역시 없다. 이란이와 함께 찍은 모든 사진은 우리가 셀카로 찍은 사진들이다. 그렇게 찍어도 괜찮다고 우리 둘은 합의를 봤다. 그 후로 고민하지 않고 우리는 같이 찍는 사진은 전부 셀카모드로 찍었다. 이 사진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얼굴을 없는 사나이가 기억을 훔쳐가서 그럴지도 모른다. 다른 사진 속의 나와 이란이의 모습은 기억이 났다. 사진 속의 식당이라든가, 시간이라 든가, 그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리틀피플이 꿈에 나타나고부터 기억이 재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이 사진은 어딘가 많아 이상했다. 사진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사진을 분명 셀카로 찍었는데 어째서 이 한 장만 누가 찍어준 것일까. 사진을 확대해서 봐도 분명 나와 이란이다. 바다가 보이는데 어디 바다일까. 바다 이외에 어느 지역이 어느 해변인지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여자 주인장이 커피를 리필해 주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인사를 했다. 역시 인상이 좋은 주인장의 얼굴이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혼자서 여행을 가시는 모양이지요?


 나는 둘러댈 말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가는 김에 시간이 된다면 석굴암에 들렀다가 가라고 했다. 석굴암이 한 동안 폐쇄되어 있다가 최근에 다시 오픈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석굴암에는 딱 한 번 가봤다. 중학교 때, 남녀 아이들이 왕성할 때라 잠은 자지 않고 밤새도록 누군가를 귀신 분장으로 놀래 키고, 술을 마시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신발에 치약을 뿌려 놓고, 온갖 장난을 치고 놀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지쳐서 아이들이 잠이 들었다. 마치 사체처럼 겹쳐서 잠이든 아이들도 있었고, 북도에 그냥 쪼그리고 앉아서 잠든 아이도 있었다.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 6시에 전부 일어나서 버스에 올라 석굴암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올라가니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들 중에서 구토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새벽에 오른 석굴암 입구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일출이란 대단했다. 이글거리는 붉은 띠가 온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 퍼졌다.


 우리는 잠결에도 전부 와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들어간 석굴암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검색으로 본 석굴암의 그 모습이 기억 속에는 전혀 없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아침을 먹은 기억은 있다.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고 이틀 째 날에 첫 경로가 석굴암이었다. 그리고 숙소를 나오면서 그곳에서 제공하는 점심 도시락을 받은 기억은 있다. 하지만 석굴암의 모습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얼굴 없는 사나이의 짓일까. 알 수 없다.


 칸타타?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입으로 말해 버렸다.


 어머, 네 맞아요. 칸타타예요. 아시네요.


 다른 곡은 모르지만 칸타타는 알고 있어요.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기는 했지만 닥치는 대로 음악을 만들어야 했다는 것도 알아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곡이 있었지만 교회의 음악을 만들어야 했고, 또 성가대도 가르쳐야 했어요. 예배 악곡도 작곡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궁정 예배당의 관현악단의 악장이 되었고 거기에 맞는 음악도 작곡해야 했어요. 자기 하고 싶은 음악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바흐의 자식들이, 혹시 몇 명이나 있었는지 아세요?


 아니요. 여덟 명?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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