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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5.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30

소설


30.


 이란이와 점심을 같이 먹을 때 우리는 야외의 벤치에 앉아서 먹곤 했다. 취준생 시절이었다. 그녀는 나를 위해 어떻게든 밥을 먹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왔다. 샌드위치든, 카레든, 어떤 것이든 도시락을 쌌다. 우리는 그 도시락을 벤치에 앉아서 같이 먹었다. 야외의 벤치에 앉았다고 해서 딱히 주위의 풍경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작은 공원이 있고, 공원은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썩 깨끗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늘 그곳에 앉았다. 벤치에 앉으면 공원 주위의 건물들 모습이 보이는 정도였다.


 낮이라 해가 떴다 싶으면 건물에 막혀 해가 잘 들어오지 않는, 그렇지만 하늘만은 잘 보이는 그런 장소의 벤치에 우리는 자주 앉아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때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자주 보곤 했다. 구름이란 잠시 얘기를 하는 사이에 모양이 순식간에 변해 있었다. 이란이는 자신이 구름이라면 참 좋겠다고 했다. 모습이 자주 변하기 때문에 자신을 잘 모를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나만이 이란이를 잘 찾아주면 된다는 말도 했다.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 보이는 저 회색 구름은 화창한 낮인데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얼굴 없는 사나이가 하는 젓일까. 만약 나를 통해서 세상을 무엇인가로 변하게 하려는 목적이라면 나를 바로 어떻게든 하면 될 텐데, 왜 이런 식일까. 이렇게 생각을 거듭하게 해서 두려움을 가지게 만들려는 것일까.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고 해서 얼굴 없는 사나이가 바라는 세계가 되는 것일까.


 자동차의 기름은 가득 채웠다.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것만큼 기분이 좋은 일도 없다. 나는 카페를 나온 뒤 쉬지 않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차는 소형차지만 밟는 대로 반응을 했다. 회색구름은 저 상공에서 나를 관찰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구름이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게 의지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지만 지금의 세계는 구름이 의지를 가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는 세계다. 의지를 가지고 전갱이 비를 뿌리면 하늘에서 비대신 전갱이가 수천, 수만 마리가 떨어지는 세계니까.


 세계가 인간과 비슷해지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분노조절에 실패했고 한 번 꺾이는 태도 없이 그대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났고 분노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멈추지 못했다. 입구의 돌을 연다는 건 사람들이 전부 분노 장애를 겪게 되는 것일까. 그 트리거가 '나'라는 인간이란 말일까. 알 수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없다.


 일단 이란이를 수목장 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가면 뭐든 그다음이 생각이 날 것만 같았다. 쉬지 않고 밟았다. 포항을 지나 영덕 7번 국도에서 빠져서 강구항에 도착했다. 강구항에는 사람보다 ‘게’가 나를 맞이했다. 강구항은 사람들이 많았다. 계절의 끝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이 항구에 죽 붙어있는 식당에서 게 요리를 먹고 다닥다닥 정박해 있는 배들을 구경하며 푸른 바다를 보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 지역에 전갱이 비가 내렸데, 같은 말을 한 번 할 뿐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차를 주차시켜 놓고 나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다. 강구항에는 대게거리가 있어서 호객을 하는 식당 사람들과 관광객의 소리가 하하 호호 들렸다. 그 사이에서 나는 구름을 주시하며 길거리 카페의 파라솔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구름을 관찰했다. 구름은 필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커피의 맛은 물맛이 많이 났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전에 경주 불국사 입구의 카페에서 마신 신선한 커피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라솔에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어 다시 하늘을 봤다. 회색구름이 사라졌다. 회색구름은 감시자였다. 내가 어디에 가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며 어딘가 있는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전하러 갔을 모양이었다. 그 누군가는 얼굴 없는 사나이 일지도 모른다. 얼굴 없는 사나이가 감시자를 두고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감시를 하면서 얼굴 없는 사나이는 나에게 조금씩 접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접근이 끝났을 때에는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라는 것이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는 주차장으로 갔다. 강구항을 빠져나오는데 차들이 많이 막혔다. 7번 국도에 올라 쉬지 않고 망향휴게소까지 달렸다. 망향휴게소는 모습을 많이 변했다. 내가 어릴 때 와보았던 작고 초라한 휴게소가 아니었다. 다시 나타난 회색구름은 계속 그 모습으로 저 위에 있었다. 모습이 변하지 않는 구름 때문에 위화감은 들지 않았다. 나는 멈춰있는 구름을 보며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은 굉장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서 맛있다. 샌드위치도 하나 먹었다. 이제 어느 정도 배가 찼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나 많이 먹어도 죽음에 가까워진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인간은 나약하기 짝이 없다. 나약해서 인간은 강하다.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다. 어쩌면 저 구름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날로 심해지는 오염과 기후변화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과학자, 기후학자들은 목숨을 걸고 연구를 거듭해서 저 구름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 회색구름은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포이즌의 노래가 듣고 싶어 졌고 휴대전화를 꺼내 유튜브로 포이즌의 I Won't Forget You를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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