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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71

3장 당일


71.

 “‘브로드웨이를 쏴라’에는 지상주의적인 모습이 많이 나와요. 그중에 후천적으로 상식 결핍증을 보이는 천방지축의 올리버 역에 제니퍼 틸리가 나와요. 실제로 제니퍼 틸리는 연기를 무척이나 잘하는 배우죠. 하지만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는 연기를 아주 못하는 배우인 올리버로 나와요. 연기를 실지로 잘하는 배우가 연기를 아주 못하는 연기를 하는 거죠. 모순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그런 모순이 가득한 곳이에요. 저를 지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이 순간만큼은 당신을 황폐한 곳에서 격렬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안타깝게도 치치에게 총을 맞아 죽지만.” 마동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두 팔로 마동의 등을 끌어안았다. 마동은 그녀의 깊은 곳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고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 붙어있는 정갈한 손톱으로 마동의 등을 꾹 눌렀다. 마동은 다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을 보기 위해 그녀의 몸을 자신의 몸에서 약간 떨어트렸다. 심약하게 벌어진 입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가 잠깐잠깐씩 뜨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는 색이 다른 렌즈를 낀 것처럼 이계의 빛을 발했고 그 빛은 마동을 하여금 미스터리한 웜홀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비는 어느 순간 가위로 싹둑 자르듯 끊어졌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의 섹스는 끝날 줄 몰랐다. 공명으로만 들리던 야외의 소리가 서서히 마동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비가 그쳤다는 것을 아는지 풀벌레가 대나무 숲에 숨어서 고개를 내밀어 마동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은밀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동은 풀벌레들의 존재를 인지했지만 그들의 존재는 마동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지 못했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안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이 기분을 끝내기 싫었다. 거뭇거뭇한 먹구름 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달이 환하게 빛을 발하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더욱 요염해졌다. 달빛을 받은 그녀의 피부는 새하얗다 못해 갓 사온 고급스럽고 깨끗한 커피 잔과 같은 피부였다. 빛은 환해졌고 은은하게 그들을 비추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움직임이 조금씩 가열되기 시작하더니 격렬해졌고 마동은 그런 그녀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허리는 마동 자신의 늑골을 움켜쥐는 기분이 들었고 군살은 만져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달빛을 받아 신음소리가 조금 더 크게 대나무 숲에 울렸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교성과 마동의 신음소리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녀의 교성에는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었고 마동의 신음에는 경계와 조바심이 있었다. 물이 흘러가는 소리와 막에 걸러 나오는 찌꺼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공존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교성은 마동의 신음소리를 누르고 대기를 타고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그 소리를 누군가 듣는다고 해도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을 교성이었다. 물론 그건 마동의 생각이었고 편견일 테지만 그렇게 믿어 버렸다.


 가만, 풀벌레 소리?


 풀벌레가 사라진 지 몇 해 되었다. 현재 이 도시의 강변 조깅코스에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에서 벗어난 일이다. 마동이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지방도시라고는 하지만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전국 최고의 거대 메트로폴리탄이다. 어쩌면 땅덩어리만 놓고 본다면 수도권보다 더 거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1950년 당시 대통령의 명으로 이 도시는 세계 최대 수주의 제조업이 들어서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인구는 그동안 500만을 육박했고 그에 따른 부대시설이 대거 늘어났다.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0년 동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경제성장은 눈에 띌 정도였다. 그 후 10년은 더딘 속도를 보이다가 이후 4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쉼 없이 멈추지도 않고 빠르게 발전에 발전만을 거듭해 왔다. 거대도시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순조로웠고 낙후된 나라와 타 도시는 대한민국의, 마동이 살고 있는 이 도시를 모델로 삼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경제매거진과 미디어는 이 도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각 나라의 도시개발 관계자들은 이 도시의 경제성장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배우러 왔다. 그에 따라 외국인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급격하고 과도한 발전은 병패를 자아냈다. 도시는 뼈대부터 시작하여 살과 혈액의 공급이 원활해야 했지만 정부는 이 도시의 뼈대만 굳건하게 세우는데 치중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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