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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7. 2020

멍게 비빔밥

단편소설

멍게 비빔밥

그로서리 쇼핑을 위해서 오밤중에 자주 마트에 들른다. 나는 카트 기를 밀고 다니지 않는다. 노란 장바구니를 옆에 들고 손으로 필요한 물품이나 식료품을 집어서 쓱 담는다.

요즘은 멍게에 푹 빠져있기 때문에 해산물 코너에서 많이 서성거린다. 멍게가 아주 싱싱하면 좋겠지만 난 아주 싱싱한 멍게와 마트의 진열장에서 절 좀 데려가 주세요, 라며 하루 동안 싱싱함과는 거리가 먼, 널브러져 있는 멍게의 맛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멍게가 보이면 따져보지 않고 노란 장바구니 속으로 집어넣는다. 멍게는 두 팩 정도 사는 게 적당하다. 손질이 되어있기 때문에 집으로 가지고 와서 뜯어서 그냥 먹으면 된다. 하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먹는다. 그러면 맛이 더 좋다. 싱싱하지 않더라도 멍게를 먹으면 입 안에 가득 감도는 그 멍게 향은 짙고 강하고 참 좋다.

멍게를 씹는 맛은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는 식감과 맛이기에 무척 반갑다. 게다가 그렇게 돈이 듬뿍 드는 음식도 아니기에 멍게에 맛을 들인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정신이 쏙 나가버린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말이다.

나는 멍게를 초장에 찍어 먹지 않는다. 초장은 멍게 맛에 방해만 될 뿐이다. 그냥 그대로 입안에 넣어서 오물오물거리면서 씹어 먹는다. 그리고 한 팩은 멍게비빔밥을 해 먹는다. 제철인 채소와 함께 멍게비빔밥을 해 먹는 것이다.

미나리와 부추를 씻어서 양념간장을 부어놓고 현미밥에 부추와 미나리를 잔뜩 얹는다. 밥은 따뜻하면 좋겠지만 식은 밥도 괜찮다. 멍게를 부추와 현미밥에 부은 다음 가위로 조금씩 자른다. 미나리가 있으면 좋다. 당근이나 여타 채소가 있으면 넣어도 무방하다. 참기름이나 양념장은 전혀 필요 없다. 그런 것은 멍게 향과 맛을 헤칠 뿐이다.

그리고 쓱싹쓱싹 비비면 밥과 부추 사이에 멍게의 노오란 향과 맛이 배고 스며들어 입안에 넣어서 먹으면 정말이지 신날 수밖에 없다. 통영의 바다까지는 아니지만 마트의 수족관이 입안에 들어온 기분이다. 그렇게 해서 멍게를 자주 사 먹는 편인데 마트의 해산물 코너를 어슬렁거리다가 비닐 속에서 꼬물대는 개불을 발견한다.

개불.
이름마저도 ‘개불‘스럽다. 눈으로 들어오는 모양은 정말이지 초현실 영화 속의 진액을 흘리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모습처럼 보인다. 촉수를 잔뜩 숨겨둔 곧 공포로 바뀌는 해저 괴물의 모습 그대로다. 개불이야 말로 지구 상에서 존재하는 생물 중에서 징그럽기는 최고일지도 모른다. 눈도, 손도, 발도, 귀도, 콧구멍도 없다. 정말이지 기이하게 생겨먹은 생물체이다.

 하짐만 멍게만큼이나 맛이 좋은 해산물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엉망진창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런 맛이 난다는 게 더욱 기이하기만 하다. 잘게 썰어서 기름장에 찍어서 입에 넣어서 야무지게 씹어 먹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 없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여느 때처럼 개불이 있는 곳에서 이 개불 저 개불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조 밖으로 나온 개불이 점점 불어나서 그 몸뚱이가 커져왔다. 개불은 그 덩치가 사람만큼이나 커져 버렸다. 곧 꿈틀꿈틀 거리 더니 지렁이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옆에서 멍게가 노오란 물을 뿜어내며 진돗개만큼 커져 있다.

맙소사.
지렁이처럼 커져 버린 개불과 강아지만큼 불어난 멍게는 오즈의 마법사 티브이 버전에 나오는 땅을 파며 모든 걸 집어삼키던 그 거대한 왕꿈틀이처럼 보였다.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처럼 마트 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우걱, 우걱.
거침없었다. 마트 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먹는 속도가 무섭도록 빨랐다. 개불과 멍게는 서로 다른 색을 지니고 같은 것들을 왕창 먹어 치웠다. 진열되어있는 모든 식품을 먹어 삼켰다. 그리고 사람도 집어 먹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저렇게 느릿느릿한 개불과 멍게가 다가오는데도 왜 재빠르게 도망가지 않지? 그러면서 나는 사람들이 개불과 멍게에게 서서히, 머리부터 천천히 개불과 멍게의 입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폰으로 사진도 찍었다. 사람들은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약간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개불과 멍게의 한 지점에 뚫린 큰 입으로 들어가 버렸다.

개불과 멍게는 엉금엉금 천천히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듯, 그런 느낌으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흥! 어림없지. 하는 생각으로 약간씩 거리를 두면서 개불과 멍게의 사진을 찍으며 대치했다. 찰칵찰칵.

개불의 얼굴은, 얼굴은 설명하기 어렵다.
멍게의 얼굴도 설명하기 애매하다.
그저 부드럽고 폭신하고 축축한 노랗고 붉은 생명체가 다가오는 것이다. 개불과 멍게의 얼굴을 생각하는 동안 문득 개불과 멍게를 먹기만 했지 개불의 몸속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생각이 들어 버리고 나니 멈출 수가 없었다. 격렬하게 개불과 멍게의 몸속이 궁금했다.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갈증처럼 타올랐다. 개불의 몸속에 안착되어있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곧 개불과 멍게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엉금엉금.
그때 마트에서 앙리꼬 마시아스의 ‘녹슨 총’이 흘러나왔다.

저는 태양이 바다를 불태우는 것을 보았어요.
화산이 땅을 갈라지게 하는 것도요.
사막에서 사라진 거대한 묘지와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내는 것도 보았어요.
저는 별들이 하늘을 성당으로 바꾸는 밤들을 겪었어요.
세월이 흐름에 따라 피해를 면한 무너진 돌담에서 자주 간청을 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래 전이 돌연 생각이 났다. 앙리꼬 마시아스의 녹슨 총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던 오래전. 그때의 그 커피 향과 함께 우리가 앙리꼬마샤스라고 불렀던 앙리꼬 마시아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부르는 노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어느 날인가 한 병사가 그의 집이 있는 마을로 달려가기 위해
어두운 수풀 속 어디엔가 놔두고 왔던 녹슨 총보다도 말이에요.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북을 치는 이 세상에서
누가 사랑보다 전쟁을 더 좋아할까요.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그것은 이젠 결코, 소용이 없을 거예요, 결코 말이에요.

당시에 우리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후에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개그 프로그램의 개그맨을 닮았다. 외국 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젊었을 적에는 죄다 촌스럽지만 늙으면 너무나 멋지다는 것이다. 앙리꼬 마시아스뿐만 아니라 숀 코네리도, 조지 클루니도 알 파치노도 잭 니콜슨도 늙어 버린 후가 훨씬 더 멋있고 정력도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개불과 멍게는 합쳐져 인간의 형상처럼 변모했다. 마치 몹쓸 폭탄의 피해자들처럼 팔다리가 부어서 아주 뚱뚱하고 얼굴은 없었다. 개불멍게는 필사적으로 마트 안의 인간들을 맛있게 먹어치우며 나에게 다가왔다.

멍게비빔밥을 비비는 동안 하는 생각치고는 몹시 호러 블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는 맛있는 멍게비빔밥을 먹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철의 달래와 미나리와 함께. 멍게와 미나리와 달래와 밥을 비벼놓으면 멍게의 향이 온 입안에 퍼지는 좋은 기분을 가진다. 멍게비빔밥과 함께 쌉싸름한 싸구려 와인을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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