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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27. 2024

53. 차가운 날의 조안 바에즈

소설


 우리는 몽땅 득재의 하숙방에 버려진 꾸러미처럼 누워 조안 바에즈의 음악을 레코드판으로 들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평화와 안식이 가득한 어떤 미지의 따뜻한 세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평안했으며 안온함이 느껴지는 기분.     


 노래가 이렇게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 노래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일치해서 더욱 신기했다.     


 득재의 방에는 학업을 손 놓아버린 아이들만 득실거렸다. 희미한 경계를 넘고 종규가 들어옴으로 해서 미술, 사진,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문학이 모이게 되었다. 자본을 끌어 모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만 모이게 되었다.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고 양궁만 하던 진만이가 가장 현명했다. 양궁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졸업하기 몇 달 전부터 자동차 정비를 배우러 다녔다.


 추위와 단절된 득재의 하숙방은 우울했다. 벽지는 70년대의 영화 속 여인숙을 보는 것 같았고 홀아비 냄새가 방에 들어갈 때마다 심하게 났는데 방에 조금 앉아 있다 보면 그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는 게 더 싫었다. 하지만 방은 차가운 겨울의 날씨를 차단했고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득재가 먹었는지 방 한쪽에 있는 상 위에는 냄비가 있었고 그 안에는 먹다 남은 라면이 이상한 모습으로 붙어 있었다. 추위를 피해 들어온 파리도 냄비 안의 라면에 앉아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아무도 그 파리를 내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안을 감도는 수컷의 짙은 향이 가득했다. 단지 우리만 그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 조안 바에즈의 노래였다. 조안 바에즈의 노래를 들으며 득재는 귄터 그라스의 '넙치'를 읽었고 효상은 누노 베튼 커튼의 기타 악보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종규는 벽에 기대어 스케치북에 무엇을 그렸다. 나머지는 그대로 벌렁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밖은 추웠지만 등은 따뜻했고 평온했다. 턴테이블은 계속해서 돌았고, 조안 바에즈의 나긋한 목소리가 우리를 훑고 방안을 돌아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 뒤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오직 신만이 알고 있었다.  


Joan Baez - 500 Miles https://youtu.be/3T9tJYS7Mp8?si=68YgaRDPbdGlsd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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