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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8. 2024

54. 사랑이 온다는 건

소설


 정현종 시인의 시에 의하면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슈바빙에 내가 가면 늘 종규가 앉아 있었다. 종규와 슈바빙 주인 누나는 초현실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종규도 슈바빙을 무척 좋아했다. 슈바빙에 내가 도착하면 종규가 나보다 먼저 와있었다. 처음에 종규가 옆에 있어서 편지를 쓰는 것이 좀 쑥스러웠지만 종규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편지를 쓰는 동안 종규 역시 스케치를 했기에 둘 다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종규는 슈바빙을 참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도 종규가 마음에 들어 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종규의 기분 좋음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종규는 슈바빙 주인 누나와도 이야기를 잘 주고받았다. 종규는 우리와 함께 있어도 조용한 편에 속했다. 그런 것을 보면 슈바빙 주인 누나는 정말 마법사이지 않을까.    

       

 “세상에 조용한 성격의 사람은 없어, 그건 상대방이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조용할 뿐이야. 아무리 조용한 아이라도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있으면 수다스럽잖아"라는 말을 슈바빙 누나는 했다.           

 종규는 미술대학에 들어갈 것이고, 독일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온 주인 누나에게 많은 것을 묻고 이야기를 들었다. 종규는 소아마비 탓에 다리를 절고 있어서 체육시간에는 늘 운동장의 로열박스에 앉아 있었다. 종규는 안경 너머로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빛은 참방이고 있지만 반목은 없었다.  

         

 “종규야, 독일어 함 해봐.”     


 우리의 말에 종규는 수줍은 미소만 지을 뿐 종규의 입에서 쿠덴 모르겐 같은 독일어는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고 종규는 독일에서 죽 살다가 중학생이 되어서 한국으로 왔다. 종규도 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카펜터즈나 맨하탄스 같은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들으면 따뜻해져.”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했지만 우리는 종규를 데리고 올 댓 재즈로, 득재의 방으로, 진만이의 숙소로, 워터 덕으로 그리고 개구리가 있는 학공여고의 문예부로 슈바빙으로 지치지 않고 같이 다녔다.         

 

 일요일은 종규가 오기 전에는 내가 제일 일찍 슈바빙에 갔지만 이제 종규가 늘 먼저 와 있었다. 초현실 그림으로 가득하고 위스키가 섞인 커피 향이 나고 오래된 노래가 나오는 곳, 진심으로 종규는 슈바빙이 자신의 집보다 낫다고 했다. 내가 일요일 오전에 슈바빙 지하에 가면 주인 누나와 함께 맨하탄스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종규는 우리를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서 썩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종규는 가족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누구나 집에 고민 하나씩을 끌어안고 있으니 우리와 비슷한 이유로 그러나 싶었다.          


 잘 알 수 없었는데 개구리가, 종규가 우리와 헤어져서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낯빛이 달라진다는 거였다. 어느 날 종규는 절뚝거리며 우리 모두를 끌고 기차역 앞으로 갔다. 기차역으로 진입하기 전에는 각종 음식점과 오래된 슈퍼 그리고 술집이 있다. 그곳에서 서서히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종규의 얼굴에서 표정이라고는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야 춥다.” 상후가 말했다.     


 “조용히 해봐. 종규가 조용히 하라잖아." 득재가 말했다.     


 “밤이 되니까 여기 분위기가 정말 달라진다.” 효상이 말했다.     

     

 역전은 밤이 되면 역 앞의 모든 가게가 흥등가로 변했다. 데면데면 죽 늘어선 가게들이 밤이 도래하자마자 간판이 어두운 등으로 밝아지고 가게 안의 불빛이 붉은색으로 기기묘묘하게 바뀌고 문을 열고 그곳에서 전부 젊은 여자들이 하수구멍으로 물이 넘치듯 흘러나왔다. 여자들은 간이 의자에 앉아서 입술을 진하게 칠하고 몸에 밀착된 원피스를 입고 기차역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면 청소년들은 여기 이 거리에 출입을 금지하니까 10시가 되기 전에 벗어나야 해.” 종규가 말했다.     


 “너 이 자식 여기 오고 싶었구나. 아, 녀석 진작 말을 하지”라고 상후가 말을 했을 때 종규가 그중에 한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 3명이 있고 그 안에 나이가 좀 든 여자가 치장을 하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우리 엄마야”라고 종규가 말했다.     

     

 정현종 시에 따르면 사람이 온다는 건,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종규는 그렇게 우리에게 온 것이다.



The Manhattans - Shining Star https://youtu.be/I_sxBUOR0Kk?si=plhw_stE_G6wt6du

Nik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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