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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31. 2024

회색도시 1

소설


1.


회색하늘이 펼쳐지면 회색도시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회색도시 속에서 시간은 의미가 사라진다. 회색도시에서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없다. 오직 현재, 현재의 시간만 있을 뿐이다. 지난 시간에 대해서 추억하거나 미래 시간에 대해서 상상을 해서는 안 된다. 회색도시로 들어가서 나의 몸이 회색이 되어 회색인간이 되면 아웃랜드 사람들도 회색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다.


기다리던 회색하늘이 펼쳐졌다. 회색도시로 갈 수 있는 문이 열렸다. 나는 그 문을 열고 회색도시로 들어왔다. 회색하늘이 펼쳐지면 문이 열리면서 회색도시로 들어가는 택시를 타면 된다. 회색도시에서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감정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 회색인간들에게 잡혀가서 처형을 당한다. 그래서 회색도시에서 사랑을 해서도 안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고, 사랑이라는 단어로 말해서는 안 된다. 대신 회색도시에서는 섹스만은 마음껏 허용을 한다.


회색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회색도시를 빠져나가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에는 사랑보다는 섹스만을 더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랑이 바탕이 되는 섹스는 금방 싫증 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건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으며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 쓸모없는 감정이라고 회색도시에서는 치부했다. 회색도시의 당에서는 사랑을 하는 인간은 처형을 하는 것으로 법으로 정했다.


회색도시를 나가려는 사람들은 아웃랜드에서 회색도시로 들어온 사람 중에 회색으로 변하는 몸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이면에는 감정을 이성이 온전하게 누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성과 섹스를 나누다가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어 입으로 사랑한다고 말해버린 사람들은 회색분자로 몰려 도망을 다니다가 아웃랜드로 나가려고 했지만 대부분 잡혀서 처형을 당했다. 회색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감정이 소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회색도시에서 나가고 싶다 하여 바로 나갈 수는 없다. 바로 들어올 수도 없다. 아웃랜드의 사람들 중에서 회색도시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돈이 아주 많은 사람, 그리고 기자들이었다. 기자들은 회색도시의 좋은 기사를 써서 아웃랜드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권한은 회색도시의 당에서 부여한다. 일반사람들은 오직 회색하늘이 펼쳐졌을 때에만 들어올 수 있다. 나는 택시를 타고 문이 열리는 틈을 타서 회색도시로 들어왔다. 나는 기자로 거짓말을 했다. 톨게이터를 지나서 나는 회색도시의 당에서 부여하는 발급권을 받았다. 일종의 여권 같은 것이다. 발급받지 못하면 아무리 회색하늘이 열려도 회색도시로 들어가지 못한다. 나는 거짓 신문기자출신으로 회색도시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회색도시로 들어온 건 탐정 레미 코숑처럼 한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다. 그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고 회색도시로 숨어들었다. 그는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사정없이 폭행했다. 아내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부었고 입술마저 전부 터졌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머리는 여러 바늘 꿰맸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을 처벌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들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늘 하던 폭행의 강도가 높아졌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온화하고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다.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직업인 것이다. 감정을 숨기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가 폭행을 저지른 아내가 나의 동생이다. 이전에도 한 번 폭력성을 보여서 그대로 그 녀석에게 갚아줬다. 그는 다시는 아내를 때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더 심해졌다. 여동생은 결혼하여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지만 아이 때문에 참고 참으며 견뎌왔다. 특히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그 녀석을 죽여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녀석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회색도시로 도망을 쳤다. 아웃랜드에서는 내가 어디든 찾아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녀석은 나의 무서움을 안다.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회색도시로 들어가서 회색인간이 되면 내가 쉽게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걸 그 녀석은 알고 있다. 그 녀석은 애초에 회색도시로 흘러들어 가서 회색인간으로 살고 싶어 했다. 감정은 잃어버리고 그저 쾌락을 좇으며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회색인간이 되면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코스모 드래건이 있다. 이 총은 인간은 죽일 수 없으니 회색도시에서, 회색인간을 죽일 수 있다. 나는 그 녀석의 흔적을 따라갔다. 회색도시에서는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어서 찾아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 녀석이 알파빌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이곳에도 돈은 유용하게 쓰인다. 돈을 풀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회색도시의 사람들은 돈이 필요하고 나는 정보가 필요하다. 알파빌은 회색도시에서 사랑이 소거된 섹스를 나눌 수 있는 모텔이다. 그 옛말 탐정 레미 코숑이 들어간 도시의 이름도 알파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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