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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01. 2024

회색도시 2

소설


2.


그 녀석은 회색도시에 적합한 인간이다. 이곳에서는 마음대로 섹스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이 보이면 누구나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회색도시에서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감정을 드러내서 죽였다고 하면 문제가 없는 곳이 회색도시다. 처형을 당해 죽고 나면 시체를 회색도시를 움직이는 연료로 사용된다. 이 도시는 죽은 사람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회색도시에서 누군가 눈물을 흘리면 감정을 가졌다는 말이다. 그때 다리가 길고 말라빠진 회색인간들이 나타나 끌고 간다. 말라빠진 회색인간들은 회색도시의 순찰대다. 처형을 당하는 방법은 잔인하다. 일단 눈물을 흘리는 눈을 도려내고 정확하게 뇌를 향해 총알 한 발을 발포하여 뇌수가 바닥에 쏟아지게 한다. 사랑을 하면 매스로 배를 열어 심장을 도려낸다. 뇌와 심장을 멈추게 해서 처형을 한다.


회색도시 안에서도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회색도시에서 눈물을 흘려도 들키지 않는 곳이 있다. 그곳은 수영장이다. 물속에서는 눈물을 흘려도 감지되지 않는다. 수영장에 자주 가서는 안 된다. 회색도시는 알고 있다. 수영장에 자주 가는 사람들을 항시 예의주시하고 있다. 나는 나타샤 폰브라운 박사를 수영장에서 만났다. 지난번에 회색도시에 왔을 때다. 그때 나는 아웃랜드의 기자신분으로 회색도시를 아웃랜드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물론 전부 거짓이지만 회색도시가 의심하지 않게 위함이다. 그때 나타샤 폰브라운 박사가 나를 안내했다. 나타샤 폰브라운은 그때 불안해 보였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불안해 보이는 나타샤 폰브라운에게 회색도시를 나오면서 엘뤼아르의 [고뇌의 수도]를 회색도시 몰래 주고 나왔다.


나는 알파빌로 그 녀석을 찾으러 갔다. 알파빌 입구에서 모텔 지킴이가 나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지킴이는 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아주 짙은 색으로 그 안의 눈동자를 볼 수 없다. 담배를 피우며 나는 코트의 깃을 잔뜩 세우고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지킴이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컴퓨터를 몇 번 두드린 다음 나에게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지킴이는 인간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회색도시 안의 기계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 존재다. 계급은 하급이다.


잠시 기다리니 금발의, 눈 화장이 짙은 여성이 내려왔다. 그녀는 자신을 비아트리스라고 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그녀는 나에게 방을 안내해 준다고 했다. 비아트리스는 알파빌에서 계급이 세 번째라고 했다. 표정은 지킴이처럼 없지만 유혹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비아트리스는 그 무표정으로 모텔의 복도에서 옷을 벗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를 유혹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안고 자폭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나의 코트 안쪽에는 코스모드레건이 있다. 그 총을 꺼내서 비아트리스에게 쐈다. 코스모드래건은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지만 기계나 회색인간에게는 총상을 입힌다. 코스모드래건의 총알을 맞은 비아트리스는 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픽셀화 되어서 부서졌다. 부서진 자리에는 볼트와 너트 몇 개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회색도시에서 과거는 없다. 미래 역시 없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할 수 없다. 회색도시에서는 오직 현재만 살아가는 사람들만 존재한다. 그러나 나타샤 폰브라운 박사는 지난번에 그런 자신을 불안해했다.


회색도시는 인구감소와 인구증폭으로 골머리를 앓을 일이 없다. 항상 적절한 인구가 유지된다. 넘치면 잘라내고 모자라면 데려와서 채운다. 회색도시의 당은 그렇게 회색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등급으로 분류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나는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는 기묘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버튼은 보이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올라가는 것 같지만 엘리베이터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진공관 안에 들어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둘러보니 이음새가 없었다. 이 모양, 이 모습 이대로 사출 된 것처럼 보였다. 아웃랜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회색도시에서는 가능하다.


나는 이전에 훈련을 위해 하얀 방에서 고립된 적이 있었다. 그건 훈련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 사이에 고립이 되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훈련이었다. 그 방에서는 나의 기억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

방에서 눈을 뜨니 하얀 방이었다. 내가 잠든 방이 아니었다. 이건 그야말로 방 그 자체로의 방이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누군가에 의해 이 방으로 옮겨졌다. 어떻게 왔는지, 누군가가 업고 나올 정도로 나는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이 방으로 옮겨온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먹이고 아주 깊은 잠으로 빠져들게 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먼저 내가 잠에서 깬 이 방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자면 이 방은 창문도 없고 출구도 없는 방이다.


말 그대로 [방]이었다. 방에는 냉장고나 가구 하나도 없었다. 거울이라고 있어야 하겠지만 이 방에서 그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천장에 몰딩도 없고 마치 하나의 철제를 일그러트려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방 같았다. 현실에서 존재할리 없는 그런 방이다. 방이란 무릇 바닥과 벽과 천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이음새로 이어져 있어야 방이 된다. 그런데 내가 잠에서 깬 이 방은 방으로써 방이 아니라 그저 표현하기 위해서 방으로 불릴 뿐인 방이다. 나를 데리고 온 누군가는 어떻게 내가 잠든 집으로 들어왔을까. 문단속을 하면 누구도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문단속을 했는지, 내가 사는 집이 어떤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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