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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1. 2024

잠을 먹는 여자 6

단편소설



6.


아니요, 그건 안 돼요. 아니 잘 모르겠어요. 아직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까요.


결혼은 그럼?


결혼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해요. 두 번 이상 잠자리를 가지면 남편의 잠을 다 뺏어 먹어버리니까요. 이론적으로는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냥 포기를 해 버렸어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왜 그런지 튀어나온 앞니의 수술이 불가능합니다. 튀어나온 앞니 때문에 호감도가 제로에 가까워요. 그런 나의 얼굴도 좋다고 다가온 남자라면 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일 거예요. 그런 남자의 잠을 뺏어 먹고 시들시들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그 모습을 제가 볼 수가 없겠죠. 그래서 포기해 버렸어요. 단지 섹스가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사랑은 별로예요. 저를 사랑한다면 정말 사랑하거나 아니면 거짓이 거 나 겠죠. 아시겠어요?


우리는 맥주를 두어 병 더 주문했다. 그녀는 곧 이 마을을 떠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한 가지를 더 털어놓았다.


실은 작가님과 함께 온 저 남자분, 준민 씨 말이에요. 오늘이 벌써 티겟을 세 번째 끊은 거예요. 지난달에도 이곳에 왔었어요. 애인과 곧 결혼할 거라는 소리를 하더군요. 이런 일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에게 분명히 경고를 했어요. 작가님, 저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주시겠어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나의 재능이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나는 나의 생각을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랬다.


10년 뒤에 적어 주셔도 돼요.


준민이와 나는 다음 날 순천만에서 사진을 담고 풍경을 바라보고 근처에서 하루를 더 묵고 다음날  돌아왔다. 나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다. 준민이는 옆에서 시종일관 시끄럽게 했지만 내내 하품을 하고 피곤을 호소했다. 준민이는 마지막 날 밤에는 피곤하다며 저녁 8시에 잠들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푹 자고 일어났지만 개운하지 않다고 했다. 사진을 담으러 여행 겸 지역을 많이 다니는데 유독 피곤하다고 했다. 준민이는 그녀가 자신의 잠을 먹었다는 걸 모른다. 분명 그 전날 그녀가 준민이에게 두세 번 정을 나눈다면 몸이 피곤해질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 대부분은 그런 말은 무시했다. 준민이는 앞니가 튀어나와 얼굴이 못생긴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는 것이 애인에게 면죄부를 받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애인을 사랑하니까 애인보다 예쁘지 않은 여자와 마지막으로 잤다는 것에 안도를 했다. 기묘하고 이상한 마음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2013년 일본영화 [전쟁과 한 여자]를 보면 패망하기 전 일본 군인은 한국에서 아주 몹쓸 짓을 저질렀다. 천왕은 모든 사람들을 죽여라, 죽이기 전에 일본군인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명을 내렸다. 주인공 군인은 전쟁으로 오른쪽 팔을 잃었다. 환지통 때문에 없는 팔이 가렵다고 긁고 다닌다. 그는 한국의 한 마을에서 군인 26명이 두 명의 여성을 강간했다고 털어놓는다. 어떤 처녀는 강간당하기 싫어서 똥을 얼굴에 발랐다고 했다. 강간을 하려는데 똥 때문에 시들해져서 강간을 못 하게 된 군인은 장작을 처녀의 성기에 쑤셔 박아서 죽게 만들었다고 했다. 패망 후 일본으로 돌아온 군인은 아내와 아들이 있었지만 팔을 잃으면서 삶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내와 아들은 위험하다며 지방으로 보내고 홀로 시체처럼 지내다가 쌀을 구한다는 일본여성에게 쌀을 싸게 구해주겠다며 산속으로 데리고 가서 머리만 가격해서 정신을 잃게 만들고 그 여성을 강간한다. 그때 군인은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여성을 죽여 버린다. 아내에게는 하지 못하는 짓을 납치한 여성을 통해서 풀어 버린다. 머리를 계속 때려서 기절을 시키고 강간을 하면서 삶을 찾아가고 아내에게 미안해서 여자를 죽이고 만다. 점점 살아있다고 느낀 군인은 7명이나 되는 여자를 납치 강간하여 죽이고 만다. 그런데 한 여자는 강간을 당하면서 좋다고 느낀다. 그런 여자가 이상해서 버리고 가버리는 군인. 여자는 그날 이후 그 군인을 찾아다닌다. 경찰은 군인을 살인범으로 체포해서 심문을 한다. 군인은 여자들을 납치해서 죽였다는 말에 전쟁 중 한국에서도 그랬다고 했다. 경찰은 전쟁에서 한 짓과 일본에서 한 짓이 같으냐라고 말한다. 그러자 군인은 전쟁이라고 해서 그 짓이 옳은 짓이라 할 수 있나, 이 모든 게 천왕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그런 알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자신의 마음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준민이는 돌아온 후 세 달 있다가 출판사를 관뒀다고 했다. 애인과 결혼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불면으로 정신병을 얻었다고 했다. 준민이는 애인 몰래 그녀에게 한 번 더 갔던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흐르는 동안 그녀에 대해서 생각은하고 있었지만 소설로 쓰려니 재능이 딸렸다.


십 년 동안 여러 소설을 썼다. 단편 소설은 계간지를 통해 발표를 했고 장편소설은 단행본으로 두 편이나 출간을 했고, 전자책으로도 출판물을 올렸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종이책과 전자책의 빈도가 비슷해졌다. 나이가 어릴수록 폰으로 책을 읽고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의 소설은 점점 인기가 하락했다. 재미있는 소설은 한 달에 수백 편씩 쏟아졌다. 인공지능이 소설계를 파고들더니 독자들을 전부 데리고 가버렸다. 인공지능은 타깃을 정하면 그 타깃의 연령을 파악하고 니즈에 맞게 소설을 썼다. 인공지능은 전 세계에 나와 있는 모든 소설을 꿰뚫고 있었다. 입력어만 집어넣으면 독자들이 원하는 소설을 적어냈다. 5분이면 장편소설이 완성되었다.


인공지능이 예술계 쪽으로 밀려들어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는 직업군은 단순직이라고 초반에는 여러 언론이나 매체, 전문가들은 말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가장 타격을 받는 쪽은 예술계 쪽이다.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이 노래 한곡을 만드는데 1분 미만이면 된다. 노래는 기가 막히게 유행을 타는 노래인데 듣기에도 좋은 곡들을 뽑아냈다. 한 달에 좋은 곡을 2, 500곡을 만들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특히 영화 쪽 그래픽은 원탑 수준이었다. 스턴트맨들이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위험한 장면도 인공지능은 몇 분이면 실사처럼 만들어 버렸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소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그동안 이런 속마음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꾸준하게 올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꾸준하게 댓글을 달았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디렉트 메시지를 나에게 보냈다. 지금 내 앞에는 그 사람이 앉아 있다. 십 년 전 그녀였다.


[이제 제 이야기를 쓰세요]라고 메시지가 들어왔었다. 십 년 만에 만난 그녀는 정말 나이를 알 수 없었다. 튀어나온 앞 니만 아니었다면 20대 같은 피부와 얼굴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인공지능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이제 써 주세요. 저의 이야기를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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