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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20. 2024

잠을 먹는 여자 5

단편 소설


5.


남성이 두세 번 당신과 잠을 자고 나면 불면에 시달린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저는 한 곳에 일 년 이상 머물지 못해요. 왜냐하면 한 동네의 남자들 중에 몇 명은 저와 그렇게 몇 번의 잠자리를 가지니까요. 그리고 불면으로 시달리게 되는 모습을 보는 게 저 역시 괴롭습니다. 어떤 남자들은 불면을 저를 탓하러 와요. 너하고 잠자리를 가진 후 그렇게 되었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큰 소리를 내지는 못하죠. 전부 아내가 있거든요. 상대의 잠을 먹은 저는 전혀 피곤함이 없어요. 잠이라는 건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잖아요. 저는 두 시간을 잠들어도 푹 자고 일어나요. 하루 이틀 정도는 잠들지 않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이 가능해요. 그게 아마 먹은 잠이 제 속에 있나 봐요.


그 질문에 그녀는 잠시 생각을 했다.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해요. 의도적으로 잠이 옮겨 오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단발성으로는 잠이 이동을 하지 않아요. 그러나 몇 번 잠을 같이 자고 나면 그렇게 됩니다. 잠을 뺏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그걸 부탁하는 아내도 있어요. 불면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일단 한 번 불면에 시달리면 생활이 무너지게 돼요.


언제부터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첫 경험을 하고 난 후는 아닌 것 같아요. 어쩌면 그때부터일지도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혼란하고 복잡한 생각만 불러들이죠. 첫 경험은 아는 오빠였고 한 번이라 그때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부터였을까 저는 앞니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다른 애들처럼 가지런했죠. 그때 즈음 앞니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은 저를 데리고 여러 성형외과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초반에는 미미하게 앞니가 나와서 저만 알 수 있었죠. 이물감처럼 입 안에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요. 부모님은 증상이 미미할 때 얼른 성형을 하고 싶어 했어요. 저도 그러고 싶었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형외과에서는 전부 안 된다고 하더군요. 진전이 없었어요. 그러는 동안 앞니는 또 조금 튀어나왔어요. 중학생 때에는 학교 모델을 하기도 했어요. 그것 때문에 저는 모델이나 연예인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모든 게 다 무너졌어요. 점점 튀어나오는 앞니 때문에요. 그땐 지금처럼 이렇게 많이 튀어나오지는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갔던 성형외과에서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바로 수술하기로 계약을 했어요. 하지만 수술이 불가능한데 그때는 수술이 된다는 의사의 말을 믿었어요. 마취를 하고 의사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성폭행을 당했는데 마취가 강했던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의사는 2차 수술이 필요하다며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뭔가 이상했지만 그러겠다고 했어요. 저는 마취를 하고 다시 수술대에 누워서 또 성폭행을 당했어요. 두 번째에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분노했죠. 하지만 법은 의사편이었어요. 그때 그 남자의 잠을 내가 먹은 것 같았어요. 설명은 어렵지만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잠이 느껴졌어요. 꿈틀거리는 잠. 그 의사는 저에게 자신의 잠 80% 이상을 뺏겼어요. 병원도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고 불면증에 심해서 요양원에 들어간 것으로 알아요.


그녀는 그때가 생각났는지 맥주를 냉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녀에게 더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녀의 나이가 40살이라는 것이다. 정녕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20대 중반, 튀어나온 입 때문에 얼굴이 못난이로 보여서 그렇지 그녀는 20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의 잠을 먹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사람은 피부를 탱탱하고 좋게 하려고 나이가 들수록 노력을 하잖아요? 잠을 제대로 푹 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죠. 저도 나이를 먹어 갑니다. 속도가 늦을 뿐이에요. 남자의 잠이 옮겨 오는 것 때문이에요. 저는 일 년 가까이 꼬박 잠들지 않아도 될 만큼 긴 잠이 제 속에 있어요.


그렇다면 그 속에 있는 잠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 준 적도 있습니까?라고 나는 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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