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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9. 2024

잠을 먹는 여자 4

단편 소설


4.


나는 준민이와 다르게 잠도 달아났고 [나 양]이라고 불리는 묘한 아가씨의 듣고 싶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커피포트에는 커피가 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걸 나의 컵에 부어서 마셨다. 커피는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다방에서 커피를 마셔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려면 다방을 찾아서 가야 한다. 주위에 카페처럼 다방이 있었다면 좀 더 수월할 텐데 다방이라는 곳은 전부 사라졌다. 다방이 나쁜 곳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티브이도 볼 수 있다. 또 마담이 이야기 상대가 되어 준다. 누굴 만날 때 편하다. 무엇보다 커피 값이 카페보다 저렴하다. 그런데도 다방은 점점 사라져서 도시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녀가 나간 지 10분 정도 지나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쟁반에는 큰 병으로 오비맥주가 세 병 있었다. 이 맥주는 보자마자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맥주 컵에 맥주를 부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자신도 부어서 우리는 건배를 했다. 역시 맛있었다. 근래에 이런 병 맥주를 본 적도 없고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시지도 못했다. 주로 글라스 비어 가게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이 정도로 맛있지는 않았다. 안주로는 반 건조 오징어와 땅콩을 들고 왔다. 물론 반 건조 오징어 역시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반 건조 오징어와 땅콩을 까먹었다. 땅콩껍질이 쟁반에 조금씩 쌓여갔다. 그녀가 이야기를 꺼냈다.


저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어요. 저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주세요.


비밀이요?


네, 저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어요. 저는 남자의 잠을 뺏어 먹어요.


잠을 뺏어 먹는다고요?


나는 놀랐다. 사람의 잠을 뺏어 먹는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런 농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잠이나 잘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진지했다.


정확하게는 남자의 잠이 저에게로 넘어와요. 티겟을 끊고 같이 잠을 자는 남자의 잠을 먹는 것이죠. 하지만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잠을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거나 그러는 게 아니에요. 방금 말한 것처럼 남자의 잠이 저에게로 넘어온다는 겁니다.


그럼 남자의 잠을 먹는다는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이죠? 그 남자의 잠을 먹으면 그 남자는 어떻게 되나요?


잠을 먹는다지만 남자에게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그저 다음 날 조금 피곤이 따라다닐 뿐이에요. 그런데 그 횟수가 늘어나면 남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저에게 이상한 일이라면 티겟으로 한 번 잠을 잔 남자들은 꼭 두세 번씩 티겟을 끊어요. 그런 남자들이 후에 문제가 생기는 거 같아요.


잠을 먹는다는 건, 잠을 뺏는다는 건 어떤 건가요?


별다른 건 없어요. 섹스를 하면 섹스를 통해 남자의 잠 일부분이 저에게로 넘어오는 거예요. 그게 단발성이면 괜찮은데 여러 번 지속되면 남자의 잠 일부분이 아니라 대부분이 저에게로 넘어오는 거지요. 그러고 나면 남자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심각한 불면에 시달리게 되거든요.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저는 보다시피 얼굴이 못 생겼어요.라고 말했는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못 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앞니가 튀어나와서 편견을 가지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근데 한 번 자고 나면 편안하다고 느끼나 봐요. 보통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라는 게 편안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으로 다가오는 남자가 많은가 봐요. 그런 남자들 대부분이 티겟을 한 번 끊고는 두 번, 세 번 티겟을 연속으로 끊게 돼요. 저는 그런 남자들에게 불을 끄고 말을 해요. [당신의 잠을 제가 먹어요. 그러면 나중에 불면이 시달리게 될지도 몰라요]라고 말이죠.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맥주를 가지고 온 바가 모텔의 꼭대기 층에 있으니 가자고 했다. 모텔에 맥주 바가 있다니. 멋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오늘 하룻밤 시간이 있고 준민이는 잠이 들었고 불을 꺼주고 꼭대기층으로 갔다. 모텔에서 운영하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바였다.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외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흔히 생각하는 맥주 바는 아니고 그저 테이블이 있고 바 테이블처럼 보이는 곳에 스낵 몇 종류와 함께 카운터 주인이 아래위로 다니면서 모텔의 숙박비를 계산하고 맥주도 팔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맥주와 안주를 들고 왔다. 주인과 그녀는 알고 지내는 사이인지 주인은 그녀에게 말을 놓았다.


맥주 바에 특별한 맥주는 없었다. 우리가 마셨던 병맥주가 있고 스낵이 몇 종류가 있을 뿐이었다. 병맥주를 또 마셨지만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어쩐지 가든에서 마셨을 때보다, 방에서 마셨을 때보다 더 맛있었다. 거품 맛도 좋았고 목 넘길 때 알싸한 긁힘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모텔에 이렇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바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쁘지 않았다. 운영만 된다면 외진 곳에 자리한 모텔의 꼭대기 층을 이렇게 하는 것도 좋았다. 그녀에게도 맥주를 권했다. 그녀는 고맙다며 맥주를 한 잔 마셨다. 튀어나온 앞니가 컵을 부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괜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녀는 나를 보며 컵을 들어 보였다. 이런 일을 꽤 당하는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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