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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3.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67


267.


 는개는 어떤 비밀을 가슴속에 담고 있는 것일까. 나와 손가락이 스쳤을 때 포효했던 세상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는개는 나에게 필시 전달사항이 있어서 왔을 것이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마동은 는개의 만개한 꽃과 같은 모습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지금 이런 순간은 누구나, 여성이면 꿈꾸는 거예요. 환상으로 끝이 나느냐 아니면 지속적으로 이어지느냐 그건 당신에게 달린 거라구요.”


 마동은 는개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이렇게 멋진 여자가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마동은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매력적인 는개에게 어떤 호감을 불러일으켰을까. 하고 2초 동안 생각해 봤지만 어두운 먹지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제가 뭐 하나 보여드릴까요?”


 는개는 자신의 주위에 얌전하게 가라앉아있던 빛의 소자들을 흐트러뜨리면서 일어나 그녀의 가방이 있는 소파에 가서 가방 안을 뒤져 무엇인가 들고 왔다. 는개가 손에 쥐고 들고 온 것은 작은 사진첩이었다. 그 사진첩에서 는개는 자신의 증명사진을 꺼내 마동에게 보여주었다. 증명사진의 뒷면에는 학생의 글씨체로 언제 찍었는지 표시를 해 주었다. 증명사진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생활기록부에 붙여야 하는 사진을 시작으로 일 년에 한 번씩 필요에 의해서 촬영을 했다며 그녀는 여러 장의 증명사진을 펼쳤다.


 중학생인 는개도 빼어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와 2학년 때의 모습은 엇비슷했다. 그런데 2학년 때와 3학년 때의 얼굴은 비슷했지만 분위기가 확 달랐다. 갑자기 커버린 느낌이 강했다. 성숙한 면모가 1년 사이에 얼굴에 두드러졌다. 그리고 슬픈 기운도 1년 사이에 얼굴에 더 짙어졌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성숙된 변화가 아니었다. 마동의 눈에 들어오는 증명사진 속 는개의 슬픈 변화는 확실한 것이었다. 회를 다듬던 그녀의 긴 손가락의 움직임에서, 머리를 푼 얼굴의 옆모습에서 언뜻 보이던 슬픈 기운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살짝 미소 짓고 있는 는개의 중학교 3학년 초 증명사진 속에는 그 나이에 비치지 않는 허무와 환멸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했다. 자신이 거울에서 봤던 그 환멸이 는개의 사진에도 있었다. 마동은 는개의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의 증명사진과 중학교 3학년 때의 사진을 비교해 가며 진지하고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는개는 그런 마동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는개는 마동의 어떤 부분을 감지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얼굴은 볼에 살이 붙어서 통통하게 보였지만 지금 옆에 앉아있는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이후의 사진은 더 이상 그 이전의 얼굴 모습은 아니었다. 벗어났다. 완벽하게.


 “귀여운데.” 마동은 아주 조용히 읊조렸다.


 “좀 크게 말 해 줘 요”라고 마동의 귀 가까이 다가와서 는개가 말했다. 마동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미소가 바로 앞에 있었다. 그녀는 마동의 집에 와서 웃음이 부쩍 늘었다. 는개의 웃음은 공허하기만 했던 거실을 밝혔다.


 반딧불이 불을 밝히듯.


 는개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증명사진을 꺼내서 바라보았다.


 “난 정말 사진이 안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에게 투덜거렸죠. 어째서 이렇게 사진이 못 생기게 나올까. 난 나에게 질문했어요. 넌 어떻게 생겨먹은 애야?”


틈을 두었다.


 “당시에 또래는 모두 그런 고민을 할 때에요.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기였으니까요. 시간이 남아돌았고 할 이야기가 많았던 시절이에요. 알죠? 사춘기니까요. 예민할 때니까. 애들 대부분 거울 속에 비친 얼굴과 사진 속의 얼굴은 정말 다른 사람이다, 너무 싫다며 투덜거렸어요.” 는개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회는 먹지 않았다. 와인만 마셨다.


 “그런데 전 그 반대의 이유로 나 자신에게 투덜거렸죠. 전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의 모습 그대로 사진에 나오는 거예요.”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너무 싫어했어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아픔을 잔뜩 지니고 있었거든요. 내가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마치 몬스터를 보는 것 같았어요. 사진을 찍으면 그 모습 그대로 나오는 거예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살을 찌우기 시작했어요. 마구 먹었죠.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7킬로그램이 쪘어요. 그리고 증명사진을 찍었죠.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볼 살이 통통하죠? 하지만 거울 속의 모습 그대로였어요. 사진에는 그대로 찍혔더라구요.”


 는개는 와인을 따라 부었고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증명사진을 학교에 제출하면 생활기록부에 붙이고 교무실에 붙이고 담임선생님의 수첩에 붙이고 그리고 학생증에 붙여야 했어요. 교내의 어디를 가나 몬스터처럼 나온 내 얼굴을 봐야만 했어요. 전 정말 싫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군”라고 마동은 굵직하게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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