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뱀파이어다 10

단편 소설

by 교관
0

[마지막]


눈물이 없는 종족이라서 아마도 울면서 잠이 들었다는 것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내 친구들의 갸릉갸릉 하는 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렸다. 나는 친구들까지 내가 불에 타면서 같이 타 죽을까 봐 손으로 친구들을 밀어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난 왜 몸이 불타면서 5초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 못한 걸까. 그 정도의 고통도 느끼지 못할 만큼 나는 그대로 죽어 버렸나. 눈을 뜨니 내 얼굴을 친구들이 들러붙어서 핥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안아주고 관에서 일어나 앉으면서 내 몸을 보았다.


몸이 불에 타지도 않았고 나는 죽지도 않았다. 밖은 분명 대낮인데 왜 그럴까. 창문으로 보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빗물이 열린 창문으로 넘어와서 내 얼굴을 적셨다. 나는 그것이 눈물인 줄 알았다. 친구들 중에는 비에 홀딱 젖은 채로 집으로 들어와 내가 잠들어 있는 관에서 같이 잠들었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찾아온다면 집주인만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 문을 열었다. 문을 조금 열어젖히니 녹슨 기차가 힘겹게 지나가는 육중한 소리가 났다.


문틈으로 한 여자가 비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양손에 사료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비를 맞고 있었지만 친구들 때문에 쉬이 들어오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 다름이 아니구요. 이층에서 보니 고양이들이 많이 들어가더라구요. 내쫓지 않는 걸 보니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는 분 같아서요. 저도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지만 길 고양이들을 들일 수 없는 형편이라 못 키우고 있는데 그 많은 고양이들을 키우려면 아무래도 사료가 많이 들 것 같아서요. 전 매 달 봉사활동을 가는데 그곳에도 사료가 많이 들어요. 이 사료들은 살찌지 않는 아주 맛있는 고양이 사료예요. 아마 애들이 잘 먹을 거예요. 라며 비를 맞으며 손식간에 이야기를 하고 양손에 들고 있던 양동이의 사료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녀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며 들어와서는 옷에 묻은 비를 털어내고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를 털며 고개를 드는 그녀의 모습은 애나였다. 나는 정말 놀랐다. 단지 머리색이 아주 검고 청바지를 입었고 언어가 다를 뿐 그녀는 애나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을 조금 벌리고 그녀를 멍청하게, 정말 멍청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웃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줬다. 눈이 초승달 같이 변했다. 애나였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잠을 자던 욕조에서 갸릉갸릉 거리는 친구들을 안아 주었으며 입을 맞대어 주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비가 내려줘서 고맙다고 기도를 했다. 기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지만 나는 기도를 하고 또 했다.


그녀는 비를 맞은 친구들의 피부병이 심각해지기 전에 전부 목욕을 시키자고 했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음악을 틀었다. 이승렬의 비상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와 함께 반지하의 작은 욕실에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씻기 싫어하는 나의 친구들을 목욕시켰다. 우리는 여러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나에게 친구들을 종종 목욕시키러 내려오겠다며 웃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얀 종이에 선처럼 뚜렷해졌다. 내 발밑에는 내 친구들이 가릉거리며 얼굴을 비볐고 비는 하늘에서 억척스럽게 떨어져 내렸다.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뱀파이어다 9